회개는 사랑의 잔치로 가는 초대장입니다.
제대 위 두 번째 보라색 초에 불이 밝았습니다.
대림 제2주일,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칩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이 엄중한 말씀이 들려오면 가톨릭 신자들의 마음은 바빠집니다. 묵은 죄를 털어내야 하는 ‘판공성사’라는 영적 대청소의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부활과 성탄, 일 년에 딱 두 번뿐인 이 의무는 기쁨보다 먼저 묘한 압박감을 선물합니다. 사실 판공성사 덕분에 일 년에 두 번은 강제로라도 착하게 살 기회를 얻으니 감사한 일이지만, 성사 한 달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무슨 죄를 지었나’ 성찰하다 보면, 끝까지 숨기고 싶은 죄 한두 개가 꼭 발목을 잡습니다. 어떻게든 ‘돌려 까기(두루뭉술하게 말하기)’를 해볼까 머리를 굴려보지만, 그러다 ‘성령 기만죄’라도 추가될까 싶어 결국 항복하고 맙니다.
판공기간에 대한 공지가 올라오고 직장인을 위한 밤 판공시간까지 공지되면 직장에서 어떻게든 일찍 도착하려고 애씁니다.
성당을 가득 메우며 판공성사를 기다리면서 불을 끈 채로 성찰을 위한 시간을 두세 시간이나 운영하는 무서운? 성당도 있습니다.
여러 신부님들이 모여 판공성사를 주기 때문에 어떤 고해소에 모르는 신부님이 계실지 ‘고해소 눈치 게임’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성찰은 하지만 껄끄러운 죄를 돌려 말하거나 고백 끝에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도 모두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는 말속에 끼워 넣고 싶은 유혹을 매번 느낍니다.
하지만 뻔히 알면서 그렇게 눙치는 것이 또 죄가 되겠거니 싶어 결국 고백을 하고 나올 때의 개운함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살인죄를 졌냐고요?
그럴 리가.......
사실 우리가 짓는 죄는 신부님들 말씀처럼 비슷비슷합니다.
미사 빠진 일, 미워하고 질투한 일, 그리고 어제 했던 험담을 오늘 또 한 일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왜 지은 죄를 반복해서 짓냐는 거죠.
미사를 시작하면서 바치는 ‘고백 기도’를 할 때마다 가슴이 뜨끔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사실 말과 행위로 짓는 죄는 덜 지으려고 애를 쓰지만 ‘생각’의 죄를 없애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제가 가톨릭 신자인 것이 은총이라고 늘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죄를 덜 지으려고 애쓰며 살아온 것은 사실이니까요.
이번 판고성사에도 줄을 서서 ‘죄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도, 은근슬쩍 새치기하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에 헛웃음이 납니다. 죄 고백하러 와서 또 죄를 짓고 마는 이 아이러니한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간적인 민낯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예전 판공성사를 볼 때, 여러 개의 고해소 안에 어느 신부님이 계셨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내 목소리를 알 것 같은 본당신부님 말고 다른 신부님이 하는 고백소가 당첨되기를 간절히 바랐던 적이 많습니다.
그래서 전해오는 웃기는 일화가 있습니다.
평소 성당에서 성령 충만하기로 소문난 레지오 단장님이 있었는데 조금 민망한 죄를 고백해야 했던 날이었습니다.
칸막이가 있는 고해소에서 얼굴은 안 보이니 최대한 목소리를 변조해서 고백을 마치고 난 후 궁금함을 못 참고 "신부님, 제가 누군지 모르시겠죠?"라고 물었습니다. 신부님이 허허 웃으며 “잘 모르겠습니다. 마리아 단장님”
이라고 했답니다.
‘무슨 죄를 고백해야 하나’ 고민하며 줄을 서 있다 보면, 긴장한 나머지 웃지 못할 실수가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이런 에피소드를 들은 적 있습니다.
한 할머님은 정성껏 적어온 죄 목록을 읽었습니다.
“신부님, 첫째 죄는 시금치 이천 원, 두 번째 죄는 콩나물 천 원...”
당황한 신부님의 지적에 할머니도 깜짝 놀랐습니다. 장을 보면서 죄목록은 장바구니에 두고 쇼핑목록을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긴장한다는 말이지요.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날 할머니의 죄뿐만 아니라 시금치 가격까지도 귀엽게 용서해 주셨을 거라 믿습니다.
회개란 이처럼 우리가 쥐고 있는 ‘엉뚱한 목록’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자비 안으로 한 걸음 내딛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고해성사의 가장 큰 은총을 ‘보속’에서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며칠을 괴롭혔던 태산 같은 죄를 고백했는데, 신부님께서 “성모송 한 번 하십시오.”라고 가벼운 보속을 주셨습니다.
고해소를 나오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내 죄가 가벼워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리는 그분의 용서가 너무나 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주님은 이미 용서할 준비를 마친 채 나를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
이번 대림 시기에는 회개를 두려운 숙제가 아니라, 천국 잔치로 가는 ‘가장 설레는 초대장’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주님,
판공성사를 앞두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당신의 자비 앞에 섭니다.
부끄러운 죄를 돌려 말하고 눙치려 했던 저의 가난한 마음을 고백합니다.
말과 행위보다 제 생각의 죄를, 주님의 자비로 씻어 주소서.
죄 목록을 내려놓고 당신 품으로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제게 주소서.
이번 대림 시기,
당신이 차려두신 사랑의 잔치상으로 기쁘게 나아갑니다.
넘어져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회개가 두려움이 아니라 천국의 초대장임을 믿으며
어떤 어둠보다 더 밝은 빛으로 저를 부르시는 당신께 무한 감사하나이다.
아멘.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12
1 그 무렵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가톨릭에서 판공성사는 1년에 두 번, 즉 부활시기와 성탄시기에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고해성사이며, 한국 교회 전통으로 자리 잡았지만, 2014년 이후로는 부활 판공을 놓쳤을 경우 성탄 판공이나 다른 시기에 받아도 인정되어 1년 중 한 번만 받아도 판공성사를 이행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공로를 판별한다는 의미: 신자가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을 성찰하고 공을 들이는 기회입니다.
한국 교회의 전통: 박해 시대에 사제를 만나기 어려웠던 신자들이 연 1~2회 사제를 만나 고해성사를 보던 전통이 이어져 온 것입니다.
교회법과의 조화: 전 세계 교회법은 1년에 한 번 고해성사를 의무화하고 있으며, 한국 교회는 이를 부활과 성탄 판공 시기에 맞춘 것입니다.
부활 판공: 사순시기부터 부활 후 삼위일체대축일 전까지.
성탄 판공: 대림시기부터 이듬해 주님세례축일 전까지.
최근 규정 (2014년 이후)
부활 판공을 놓쳤더라도 성탄 판공 또는 연중 어느 때든 고해성사를 받으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