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깨어 있으십시오, 꽈당 소리가 나기 전에

by 보리

깨어 있으십시오, 꽈당 소리가 나기 전에

2025년 11월 30일 일요일 [자] 대림 제1주일


성당 제대 위에 보랏빛 첫 번째 대림초가 켜졌습니다.

교회력으로 따지면 오늘이 바로 ‘신정(新正)’인 셈입니다.

새해 첫날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였습니다.


“깨어 있어라.”


발바닥만 성당 마당을 밟고 다닌 지도 어느덧 40년이 다 되어갑니다. 세월의 짬밥이 쌓이다 보니

‘그럼 그렇지, 올 게 왔구나’ 하는 마음이 듭니다.

사실 고백하자면 미사 시간 내내 정신은 안드로메다로 탈출하기 일쑤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분심(딴생각)은 잡초처럼 무성합니다.

미사 중에는 네 번 성가를 부르는데 신자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가장 우렁찬 목소리로 파견 성가를 부를 때면 묘한 동질감을 느낍니다.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하고 소박한 위안을 해봅니다.


‘깨어 있으라’는 말은 성경 여기저기서 나오지만, 사실 이만큼 지키기 어려운 말도 없습니다. 눈을 빤히 뜨고도 마음은 쿨쿨 잠들기 일쑤인 저 같은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언젠가 들었던 어느 시골 성당의 해프닝이 생각납니다.

맨 앞줄에서 1년 내내 졸고계시던 회장님이 코까지 골기 시작하자 화가 난 신부님이

“여러분,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라고 소리치며 제대를 주먹으로 내리치셨습니다.

깜짝 놀라서 깨어나신 회장님이 의자 뒤로 고꾸라지셨습니다.

‘꽈당!’ 하는 소리에 신자들은 키득거렸고, 신부님은 깊은 한숨 뒤에 이렇게 덧붙이셨습니다.

“보십시오. 깨어 있지 않으면 저렇게 뒤로 넘어지는 법입니다.”

사람들은 웃었지만, 그날 이후 회장님의 미사 중 잠버릇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웃다가도 왠지 모를 짠함이 느껴졌습니다.

고3, 야간 자율학습을 할 때, 초저녁 잠이 유독 많았던 저는 밤 9시만 되면 뺨을 꼬집고 세수를 해도 쏟아지는 잠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결국 책상에 엎드려 자다 보면 야간 종례 들어오신 담임선생님이 저를 깨우는 게 매일의 일과였습니다.

“집에 가야지. 그만 일어나라.”라며 선생님이 깨우실 때의 민망함을 잊을 수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 새벽잠이 없어진 후부터는 새벽 미사를 다닙니다. 성가 반주를 하는 언니 덕분이기도 하지만, 교중 미사를 다녀오면 하루가 다 끝난 것 같아 ‘한갓진’ 새벽 미사시간을 선호하게 된 탓도 있습니다.

사실 속셈은 교중미사는 길고 새벽미사는 짧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작년 어느 날, 피로가 쌓인 채 새벽 미사에 갔다가 잠깐 졸았나 봅니다.

아주 잠깐이지만, 뭔가 싸한 공기가 느껴져 눈을 뜨니 저만 앉아 있었습니다.

미사 중엔 일어섰다 앉았다를 반복해야 하는데, 잠시 졸다 보니 일어서야 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것입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는 정말 육체적으로도 깨어 있기 힘든 체질이라는 것을요.

그런데 또 생각했습니다. 육체적으로 깨어 있는 것도 어렵지만, 영적으로 깨어 있는 건 더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요.


그래도 영혼만큼은 애써 깨워보겠다고 다짐하며 대림의 문턱을 넘습니다.


대림은 기다림의 계절입니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린다는 건 날짜를 세는 계산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을 열어두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종종 저의 기다림은 하느님보다 빽빽한 세상의 일정표를 더 챙기느라 분주합니다. 그러다 보면 대림의 새해는 ‘신년’이 아니라 그저 ‘바쁜 12월’의 다른 이름이 되고 맙니다.


올해의 대림은 조금 다르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넘어지기 전에 주님께 살짝 기대는 법을 배우는 ‘사랑’의 깨어 있음이고 싶습니다. 흔들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대림초의 불꽃처럼, 비록 졸다가 뒤로 넘어질지언정 다시 일어날 용기를 내보려 합니다. 아니면 조용히 잠깐 쉬었다가 다시 켜는 방법도 있겠지요.


“나는 언제든 넘어질 수 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서면 된다.”


화살기도라도 놓치지 않는 일상

저는 올해 대림을 그렇게 시작하고 싶습니다.


영적으로 깨어있겠다는 다짐을 담아,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묵상의 시간을 갖기로 약속해 봅니다.


대림절 첫째 주일에 한 개의 초에 불을 붙이고, 둘째 주일에는 두 개의 초에, 셋째 주일에는 세 개에, 그리고 넷째 주일에는 네 개의 초에 불을 붙이며 예기예수님을 기다린다.





주님,

제가 자주 잠드는 사람이라는 걸 아시지요.

그러니 제게 “깨어있어라”보다 “조금 더 사랑하라”라고 속삭여 주세요.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깨어 있음이 아니라,

넘어지는 저를 보면서도 다시 웃으며 시작할 수 있는

다정한 깨어 있음으로 이 새해의 첫 주일을 살게 해 주십시오.

아멘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3,11-14ㄱ


형제 여러분, 11 여러분은 지금이 어떤 때인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 이미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더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12 밤이 물러가고 낮이 가까이 왔습니다.

그러니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

13 대낮에 행동하듯이, 품위 있게 살아갑시다.

흥청대는 술잔치와 만취, 음탕과 방탕, 다툼과 시기 속에 살지 맙시다.

14 그 대신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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