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2025년 08월 31일 일요일
[녹] 연중 제22주일
오늘 전례
오늘은 연중 제22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과 죄인들을 새 계약의 잔치로 부르십니다. 주님의 잔칫상에 앉은 우리 모두 한 형제임을 깨닫고,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알아 뵙고 공경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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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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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7-14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2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이에게도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일요일 일찍 일정이 있어서 토요일 특전미사를 갔다.
주일미사를 대신할 수 있는 미사가 있다는 것이 참 은혜롭다.
토요일 특전미사는 청소년미사다.
푸릇푸릇한 청소년들의 목소리로 부르는 성가는 싱그럽고 미사는 생기가 넘쳤다.
‘교만’에 대해 묵상하려 했으나 계속 분심만 든다.
겉으로만 겸손했던 수많은 순간들이 떠올라 계속 머리를 흔들고 있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는 말씀은
“그러나 많은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될 것이다.”(마르코복음, 10, 31.)는 말씀과 일맥 상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MBTI에서 겉으로는 극 I인 나의 내면은 늘 폭풍과 풍랑이 휘몰아치는 감정의 파도로 극 E라는 느낌으로 살았다.
예민하고 감성적인데, 그걸 감추기 위해 ‘안 그런 척’, ‘괜찮은 척’을 많이 하고 살았다.
주님 앞에 내려놓고 내어 맡기는 것을 잘 못했다는 얘기다.
지나고 보니 그게 다 교만의 소치라는 생각이 든다.
한없이 나약하고 늘 흔들리는 신앙인이지만 성가를 통해 많은 은혜를 받았다.
슬프면 슬픈 성가를
기쁘면 기쁜 성가를
위로가 필요할 땐, 또 위로의 성가를 들으며,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성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노래하는 이는 두 배로 기도하는 것이다(qui cantat, bis orat)”라고 말씀하시어 성가가 영혼 깊숙이 하느님과 연결하는 통로임을 설파하셨다.
미사에서의 노래는 단순한 음악이 아니라 천상의 전례에 참여하는 은총이다.
기도와 묵상이 되지 않았는데, 청소년미사에서 노래를 통해 두 배의 기도를 올리고 왔다.
30년 전 겨울, 지하철을 잘못 타서 어두워져서야 몽마르트 언덕 자비의 성당에 도착했을 때,
막 미사가 시작되었고, 수십 명의 수사님들이 부르는 성가가 너무 아름다워 저절로 눈물이 흘러나왔다.
성가를 듣는데 ‘아 하느님이 살아계시구나. 천상의 나라가 정말 있구나.’하는 마음이 저절로 들 정도로 천상의 소리를 들었다.
1998년 설립된 한국가톨릭문화원은, 인천교구 박유진 신부님이 주임신부로 문화예술을 통해 기쁨이 넘치는 세상과 교회를 구현하고자 설립되었다.
2013년에는 김포에 아트센터를 개관하면서 문화예술을 통한 교회·사회 구현을 위한 공연과 음악미사를 진행한다.
몇 년을 음악미사에 참례하면서 느꼈던 하느님의 현존 체험으로 많은 은혜를 받았다.
철야 기도회에 가서 밤새 성가를 부르고, 체험 말씀을 들으면 까무룩히 가라앉고 있던 신앙심이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곤 했다.
그리고 몇 년 전 수원가톨릭 대학교에서 후원자를 위한 하루 피정에 갔을 때,
신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많은 기도가 쌓인 곳이라 은혜롭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고, 피정 중에 젊지만 아직은 앳된 얼굴을 한 신학생들의 성가공연을 보면서 뭉클했다.
온 삶을 하느님께 헌신하며 일생을 사는 사제, 수도자들의 삶이 보이는 가톨릭 교회.
그것이야말로 ‘신앙의 신비’이고 기적 같은 일이다.
집에 돌아와 아름다운 미사성가가 천상의 소리로 울려 퍼지는 영화 ‘신과 함께 가라.’를 다시 봤다.
은혜충만한 성가의 은총.
가장 순수하고 낮아지는 체험.
하느님 감사합니다.
주님,
제가 높아지려는 마음을 버리고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당신만 바라보게 하소서.
사람의 인정보다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게 하시고,
겸손 속에서 참된 기쁨을 살게 하소서.
오늘도 낮아짐으로
당신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게 하소서.
아멘.
[영화] 신과 함께 가라 vaya con dios, 2002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감독 : 졸탄 스피란 델리
주연 : 마이클 귀스덱, 매티아스 브레너, 다니엘 브륄, 키에라 스콜라스
조연 : 트라우고트 버레, 하인즈 트릭스너, 크리스텔 피터스
https://www.youtube.com/watch?v=UKLAxyQJt58
https://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04&utm_source=chatgpt.com
(영화 내용 칼럼)
독일 영화 신과 함께 가라는 세속의 유혹 속에서 수도자의 길을 지키려는 세 신부의 여정을 코미디처럼 그린 로드무비로 영화로 내내 장엄한 미사 음악이 흐른다.
쇠락한 칸토리안 교단을 살리기 위해 세 신부가 길을 나서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가상의 가톨릭 교파인 칸토리안 교단의 수도사들이다. 칸토리안 교단은 성령을 소리라고 믿고 찬양 가운데 하나님과 함께 한다고 믿었다.
그로 인해 1693년 가톨릭교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받아 파문된 칸토리안 교단은 현재 각각 이탈리아와 독일에 하나씩 단 두 개의 수도원만 남아있다.
속세를 떠나 행복하게 찬양으로 수행하던 네 명의 수도사들은 어느 날 후원이 끊어지고, 갑작스럽게 원장이 세상을 떠나자 위기를 맞는다.
학문적 허영, 가족과 집안일, 첫사랑이 각자에게 유혹이 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본래의 자리, 수도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이 과정은 마치 미사의 전례 순서를 따라가듯 음악으로 채워진다.
장엄한 입당 성가처럼 열리는 서두,
참회 성가처럼 드러나는 유혹과 고백,
봉헌 성가처럼 치열하게 내려놓는 과정,
그리고 성체성가 같은 깊은 은총의 순간이 교차한다.
세 명의 수도자들이 여행을 마치는 순간까지 칸토리안, 즉 ‘찬양하는 사람들’인 그들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찬양은 영화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며 이 영화를 잊을 수 없게 만든다.
영화가 주는 울림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무엇이 진정 소중한지 묻고, 신앙인의 길을 다시 일깨운다.
아름다운 음악이 마음을 깊이 위로하며, 결국 삶의 소명은 세상 유혹을 넘어 구원의 선율을 따르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영화 신과 함께 가라 성가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https://www.youtube.com/watch?v=mg6uiqkIs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