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비
봄 비
나지막이 시작된 이야기처럼
세상이 빗소리 뒤에 기대앉는다.
묵은 생각 몇 조각이
가지 끝에서 서서히 젖는다.
사랑이었으나 서툴렀던 침묵들.
내 안에서
비처럼 내려와 고요히 젖는다.
한때 꽃이었던 추억도
칼이 되어
날카롭게 서로를 베던 시간들
용서는 미움보다 깊고
잊어야 할 건 사람만이 아니다.
피지 못한 마음 하나
비에 젖은 흙 위에서
노란 꽃으로 다시 피어났다.
내 안의 겨울도
말없이 낮아져
누군가의 뿌리를 적시는 일.
쓰러진 자리에서 다시 피어나는 일.
살아난다는 건,
다시 아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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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봄비가 내렸다.
산 벚이 지고 난 후 산 라일락이 피어있는
앞산 허리에 비안개가 걸려있다.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긴 시간 생존의 사투를 벌였을 생명들이 꽃과 새싹으로 다시 깨어났다.
비에 젖은 미나리아재비의 노란 꽃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모든 존재가 어떻게 세상을 견디며 살고 있는지
비가 내리고, 흙이 젖고, 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며 나도 살아있다는 사실이 온몸의 감각으로 느껴졌다.
한때는 환하던 시간과 추억도
서로를 찌르던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아픈 흔적은 봄비에 씻어버리고
그저 조용히 젖어 들어 흘러가고 싶다.
산다는 건, 어쩌면
다시 젖고, 다시 피어나는 일처럼
여전히 힘겨움의 연속이라는 것을 알지만
묵묵히 흙을 적시며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이 자리에 조용히 서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