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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윤슬

by 보리

윤슬



가을 오후,

무수히 아름다운 것들이

밀려왔다 사라지며

호수의 기억을 깨우고 있다.



나는 네 이름을 부르고,

너는 대답 없이 빛으로 흩어진다.



나는 네 안에서 반짝이다가

너의 그림자가 되어 사라지고,

너는 내 안에서 빛나다가

눈물이 되어 녹아버린다.



물비늘 위로 하늘의 일부가 흘러내려

무너지는 희망도

한순간은 눈부시다.



사랑은 언제나 잠시 눈부시고,

가장 아름다울 때,

사라진다.



나는 오늘도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한다.




호수 위에 바람이 눕는다.

빛은 물을 품고,

물은 하늘을 품어

햇살이 그 위에서 꿈을 꾼다.


찰나의 사랑이 무수히 모여

멈추지 못하고 흔들리며

사라짐을 거듭한다.

닿으면 사라지고

눈 감으면 되살아나는 것.

눈부심을 견딜 수 없어

다시 눈을 감는다.


너는 내 안에서

한 줄기 빛으로 반짝이다가

마음의 파도 위에서

흔들리다 사라진다.

의식의 거울처럼 번쩍이다가,

침묵의 숨결 속으로 잠드는

사랑이란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


물비늘은 다른 얼굴로 깨어나

수많은 ‘나’들이

순간의 영원을 흉내 내고 있다.


빛이 짙을수록

더 빨리 흩어지고,

그 사라짐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순간이다.





윤슬


바다나 강, 혹은 호수 위에서 하늘과 물이 만나 춤추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햇빛과 물결이 맞닿으며 피워내는 세상에서 가장 짧고 눈부신 축제.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오던 오후,

잔잔한 바다 위에 쏟아진 빛의 물결은 순간마다 모습을 바꾸며 나를 삼켰다.

그 찰나의 황홀함 앞에서 나는 숨조차 멈추고 자연의 눈부신 군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야간 다이빙을 마치고 돌아오다,

바다와 달빛이 만들어내는 달빛 윤슬인 은결(銀結)을 본 적이 있다.

은색의 빛이 일렁이는 떨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물비늘이라는 말도 곱지만, ‘윤슬’이라는 우리말이 참 좋다.


가을 오후,

호수 앞에 앉아 수백, 수천의 무희가 춤추듯 자리를 옮겨 다니는 윤슬을 바라보고 있었다.


찰나를 살고 사라지는 빛의 생명들.

짧아서 더 아름답고,

사라져서 더욱 그리운 것들.


달빛 윤슬인 은결(銀結) _ 사진 출처 : https://brunch.co.kr/@rita1595/43





윤슬 어원

'윤슬'은 1999년에 출판된 표준국어대사전 초판부터 등재된 단어이며, 고유어이자 순우리말로 분류된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이 단어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반짝이는 구슬'이나 '물비늘'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단어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윤슬의 뜻 유래설


'윤이 나는 구슬':

'반들반들 윤이 나는 구슬'이라는 뜻에서 왔다는 견해로 빛나는 구슬이 흩어진 듯 한 물결의 모습에서 유래했다는 설.

제주 방언 유래설:

이 단어가 제주도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일부 사전에서는 제주 방언에서 유래했다는 설.


합성어 추정:

정확한 어원을 알 수 없는 고유어지만, '젖을 윤(潤)'이라는 한자와 '구슬 슬'을 합친 특이한 합성어일 수도 있다는 유래 설.


유사어


물비늘:

'잔잔한 물결이 햇살 따위에 비추는 모양을 이르는 말'로, '윤슬'과 가장 유사한 뜻을 가진 순우리말로 반짝이는 모습이 물고기 비늘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은결(銀結):

'달빛에 비치어 은백색으로 반짝이는 물결'을 아름답게 이르는 말로 '은색으로 빛나는 물결'이라는 뜻으로, '윤슬'이 햇빛과 달빛에 모두 사용되는 것에 비해 달빛에 한정되는 뉘앙스가 있다.


윤놀:

제주 방언으로, '윤슬'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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