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김밥을 말며

by 보리

김밥을 말며


상추 한 장 위에

묵은지를 펼치고

먹다 남은 반찬 몇 가지,

냉장고 깊숙이 부활을 꿈꾸며

식어가던 달걀은

말라가던 당근을 만나

한 끼의 기억이 된다.


처음 만난 타인처럼

겹겹이 쌓인 재료들이

어색하게 인사하며 돌돌 말린다.


사는 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뾰족한 날들, 짠 기억들

달고 부드러운 추억과 어우러져

견딜 만한 하루로 만들어 가는 일.


대충 만 김밥 한 줄

조금 흘러내린 속재료들이

어쩐지 나를 닮았다.



먹어보니,

의외로 괜찮다.

이런 맛도,

사는 일도.

김밥2.jpg

---------------------------------

김밥은 축제다.


일 년에 두 번 봄소풍, 가을 소풍

그리고 만국기가 운동장 하늘을 뒤덮어 콩당콩당 가슴 뛰던 운동회

그때마다 엄마는 김밥을 싸서 따라오셨다.

나도 엄마가 되고 난 후, 꽤 많은 김밥을 쌌다.

아이가 유치원 때는 소풍은 물론 체험학습을 멀리 갈 때마다 김밥을 쌌다.

김밥 싸는 일이 아이에게는 축제이지만 엄마들에겐 고단한 노동이라는 것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하루 종일 아이를 맡기는 종일반 엄마의 처지로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선생님 김밥까지 쌌다.

열 줄은 부족해서 스물 줄을 쌌다.

퇴근길에 장을 보고 열 가지 가까운 재료를 준비하다 보면 늦은 밤이 되었고, 스무 줄 김밥을 싸고 출근하려면 새벽 서너 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나의 잠을 말아서 김밥을 쌌다.

사실 김밥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니 대충 싸도 맛있다.

하지만 고마운 선생님께 드리려고 정성을 다하니 꽤 맛있는 김밥이 되었고, 김밥 집 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비결이라면 간 맞추기?? 그리고 정성이었다.


요즘은 간혹 잔반처리를 위해 김밥을 싼다.

조금 흐트러진 김밥이

어쩐지 나를 닮아 위로가 된다.


대충의 맛,

그 안에 담긴 나름의 온기.

보통의 날을 무사히 살아낸 감사이다.


김밥 1.jpg


작가의 이전글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