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을 말며
김밥을 말며
상추 한 장 위에
묵은지를 펼치고
먹다 남은 반찬 몇 가지,
냉장고 깊숙이 부활을 꿈꾸며
식어가던 달걀은
말라가던 당근을 만나
한 끼의 기억이 된다.
처음 만난 타인처럼
겹겹이 쌓인 재료들이
어색하게 인사하며 돌돌 말린다.
사는 일도 이와 같지 않을까
뾰족한 날들, 짠 기억들
달고 부드러운 추억과 어우러져
견딜 만한 하루로 만들어 가는 일.
대충 만 김밥 한 줄
조금 흘러내린 속재료들이
어쩐지 나를 닮았다.
먹어보니,
의외로 괜찮다.
이런 맛도,
사는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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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밥은 축제다.
일 년에 두 번 봄소풍, 가을 소풍
그리고 만국기가 운동장 하늘을 뒤덮어 콩당콩당 가슴 뛰던 운동회
그때마다 엄마는 김밥을 싸서 따라오셨다.
나도 엄마가 되고 난 후, 꽤 많은 김밥을 쌌다.
아이가 유치원 때는 소풍은 물론 체험학습을 멀리 갈 때마다 김밥을 쌌다.
김밥 싸는 일이 아이에게는 축제이지만 엄마들에겐 고단한 노동이라는 것을 엄마가 되고 나서야 알았다.
하루 종일 아이를 맡기는 종일반 엄마의 처지로 선생님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담아 선생님 김밥까지 쌌다.
열 줄은 부족해서 스물 줄을 쌌다.
퇴근길에 장을 보고 열 가지 가까운 재료를 준비하다 보면 늦은 밤이 되었고, 스무 줄 김밥을 싸고 출근하려면 새벽 서너 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나의 잠을 말아서 김밥을 쌌다.
사실 김밥은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니 대충 싸도 맛있다.
하지만 고마운 선생님께 드리려고 정성을 다하니 꽤 맛있는 김밥이 되었고, 김밥 집 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비결이라면 간 맞추기?? 그리고 정성이었다.
요즘은 간혹 잔반처리를 위해 김밥을 싼다.
조금 흐트러진 김밥이
어쩐지 나를 닮아 위로가 된다.
대충의 맛,
그 안에 담긴 나름의 온기.
보통의 날을 무사히 살아낸 감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