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두화(佛頭花)
불두화(佛頭花)
-불기 2569년 석가탄신일에
풍경소리 한 점,
마음의 먼지를 쓸고 지나가면
빛은 더디게 기울며
꽃잎 사이로 스며든다.
허공에 마음을 놓아버리듯
아픈 인연도 바람에 실어 보내고
연등처럼 둥글게 피어난다.
부처님 이마를 스쳐온 바람 한 줄기
꽃봉오리 곁을 맴돌다
말없는 기도가 된다.
잠시 머물다 갈 이곳에서
비우고 가야 할 것들뿐인데
켜켜이 눌러둔 미움은
이끼처럼 자라
끝내 증오의 언어가 되어 세상을 적신다.
용광로 같은 분노도
입술 깨물던 고통도
이루지 못한 사랑까지도
언젠가는 모두
내려놓고 가야 한다.
뜨거울수록 아프고
아픈 만큼 더 허무한
생의 끝에서
내 안의 슬픔 하나를 조용히 접는다.
지금 여기
그윽한 향기 한 줌으로 남아
누군가의 찢긴 마음 위에
조용히 피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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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일이면 산길입구부터 복사꽃처럼 고운 연분홍빛 연등이 걸린 산길을 걸어,
풍경 소리를 들으며 담백한 절밥을 먹곤 했다.
꽃이 만발한 봄날, 부처님의 자비가 온 세상을 향기로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가난했으나 마음은 풍요로웠던 시절이었는데, 풍요롭지만 곁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바쁜 세상에 온갖 사고와 칼날 같은 언어에 뉴스를 보기가 두렵고, 서로를 비난하는 살벌한 말들이 비수처럼 날아와 심장이 베이는 느낌이다.
의심의 눈으로 서로를 노려보고
비난의 언어로 서로를 베어내고
그 칼날은 다시 돌아와 어깨에 푸욱 박히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를 듣고 싶어 작은 풍경 하나를 걸었다.
집에 들어와 주인행세하는 길냥이 동이가 풍경소리를 들으며 성불수행 중이다.
수행자의 자세가 방자하다.
고운 연등처럼 떠 있는 용서의 마음,
우주를 품을 것 같은 자비의 손길을 누구나 가지고 있으나 알지 못한다.
원래부터 있었으나 알지 못하고 지나간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절 마당에 풍성하게 피어있던 불두화를 내 뜰에서도 보고 싶어 작년 가을 작은 묘목하나를 샀다.
소나무 그늘에서 제대로 자라지 못한 나무를 올봄에 옮겨 심었더니 자그마한 두 개의 꽃송이를 달았다.
뜰 한편에서 봄이면 늘 풍성하게 꽃을 피워 올리는 목수국과 닮아도 너무 닮았다.
사진을 찍어 비교해 보니 똑같다.
목수국이 아니라 그리워하던 불두화였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으나 알지 못하고 지나간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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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도 미워하는 사람도 가지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날까 괴롭다.
不當趣所愛 亦莫有不愛
愛之不見憂 不愛見亦憂
<法句經/법구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