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달이
반달이
반달이는 봄이었다.
이불 끝에 흐리게 체온으로만 남은
눈물 나는 봄이었다.
털 끝에 꽃잎같은 생기를 달고
감나무를 오르던 사랑이었다.
반달이 뜨면
너는
부드러운 어둠으로 와서
내 심장 근처에 둥글게 말렸다가
또 조용히 떠났다.
거친 삼베에 싸인
너를 묻고
네가 떠난 자리에
작고 빨간 단풍나무를 심었다.
계절이 자라고, 잎이 흔들리고
낙엽 지고나면 떨어질 슬픔을 심었다.
그 흔들림이
네가 도착한 별에 닿아
전생에 너는 누구였는지
내게 속삭여줄 수 있을까.
애타게 그리워
다시 온 가족이었을까,
아니면 오래전에 놓쳤던
한 조각 마음이었을까.
이 세상에서
함께한 몇 번의 계절 동안
너는 나를 다녀간 생명 중
가장 밝고, 환하게 빛났다.
반달이 뜨면
밤나무 그림자 사이로
너의 털이 반짝이는 것 같아
가만히
네 이름을 불러본다.
2년 전 이른 봄날
눈에서 피고름을 흘리고
뼈만남아 깡마른 세 마리 새끼 길고양이가
울타리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길냥이 엄마는 새끼들을 두고 로드킬을 당했다는 소문이 마을에 돌았다.
옥이, 금이, 동이 삼형제
이름을 주고
밥을 주고
약을 먹이고
품을 조금씩 나누었다.
반년쯤 지나서야
옥이와 동이는 개냥이가 되어 다가와 비비고 빗질을 받았다.
살이 오르고
햇살에 털이 반짝이던 늦 가을
갑자기 금이가 아팠고
말 없이 집을 나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많이 아파하던 금이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가슴 깊이 얼음이 깨지듯 자잘한 금이갔다.
금이가 떠나기 전 금이 곁에
하루 종일 붙어 앉아 위로하던 정 많은 옥이가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었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난해 여름
코끝이 빨간 길고양이 하나가
신중한 눈빛으로 몇 달을 탐색하더니
작은 생명 셋을 데려왔다
반달이, 알롱이, 나비
엄마를 닮아 경계심이 심한 아이들은
지금도 만질 수 없다.
밥먹으러 현관까지 들어는 오지만........
아침저녁으로 밥시간은 기가 막히게 맞추어 와서
밥 달라 졸라댄다.
지들이 맡겨놨으니 내놔라는 배짱이다.
유난히 추웠던 지난겨울은
아랫집 따뜻한 창고에서 잔다는
엄마 은이만 빼고
현관에 마련해 준 숨숨집에서
서로 끌어안고 지냈다.
겨울 끝자락
냥이들이 더 행복해지길 바라며
힘들게 잡아
중성화를 마쳤다.
그러고
무서운 범백이 왔다
약을 줘도 바로 토하고
나비, 옥이, 반달이가
하루하루 무너졌다
밥도 못 먹고
서서히 눈빛이 사라지는 걸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했다.
나비는 이주일 가까이 아무것도 못 먹었고
정 많은 옥이는 아픈 나비와 반달이를 안고
몇 날 며칠 함께하다 자기도 병에 걸렸다.
은이, 동이, 알롱이는
밥만 먹고 얼른 사라졌다
본능이라는 건,
슬픔보다 날카로웠다
가장 밝고, 가장 작은
반달이는
사흘 만에
현관에 쓰러져 고양이별로 떠났다.
반달이를
고운 삼베에 싸여 앞밭 끝에 묻혔다
그리고
그 곁에
나는 작고 빨간 단풍나무를 무덤곁에 심었다.
가을이면
단풍 잎이 곱게 물들어
그 흔들림이
고양이별까지 전해지기를,
거기서 반달이가
조금은 따뜻하길 기도한다
얼굴 반쪽이 하얀 아이,
그래서 붙인 이름
반달이
반달이가 떠난 밤 이후로
반달이 뜨면
마음이 아려와
그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본다.
깨발랄 반달이가 오르던
밤나무, 소나무는 그 자리 그대로인데
뒹굴던 잔디밭도 푸르게 살아났는데
반달이는 없다.
‘함부로 인연을 맺지 마라’ 하신 법정스님 말씀
이승과 저승으로 나뉘는
이별만큼 아픈 이별이 있을까?
생명 있는 것들과 인연 맺는 일은
참으로 아프고
참으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