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무꽃

by 보리

무꽃



기다리는 줄도 몰랐다

약속도, 안부도 없이

떠났다 돌아와 보니



내가 없는 사이에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너는 나를 불렀구나



오래전 스친 인연이

우연을 가장해

다시 찾아온 것처럼



흙 속에서 만난 바람과

비와 햇살이

각자의 이름을 바꿔가며

그리움처럼 너를 키웠구나.



풀벌레가 흘린 노래가

가지 끝에 묻어

연보라색으로 마음이 물들고



사람도, 무도

어쩌다

꽃이 되어도 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무꽃3.jpg


무꽃을 만나긴 어렵다

꽃이 피기도 전에 늘 먼저 먹어버리기 때문이다.


여러 날 집을 비웠다 돌아오니 나를 기다렸다는 듯

무더기로 피어난 연보라 꽃들이 반가워

누구의 얼굴을 닮았는지 바람에게 물어본다.


나는 텃밭을 꽃밭으로 만드는 재주가 있다

아니,

욕심 가득 심어둔 야채들이

나의 게으름에 기대어 조용히 꽃이 되어버린 것이다.


먹는 것보다 꽃을 보는 것이 좋다.

꽃이 가득한 텃밭을 어슬렁거리다 보면

벌과 나비가 나를 꽃인 줄 알고

슬며시 다가온다.


연보라 빛으로 물든 이 마음

그래 꽃이 되어도 좋겠다.


무꽃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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