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여름 숲에서

by 보리

여름 숲에서


가끔,

하늘을 떠받들고 선 것이

부끄러울 때가 있다.


여름 숲

깊은 그늘을 입고 나면

빛보다 어둠이

더 따뜻하다는 걸 알게 된다.


나무와 나무의 침묵이 만나

서로의 그림자에 등을 대고

시린 낙엽을 딛고

천천히 깨어나


잎으로 바람을 흔들고

가지는 새의 무게를 견디고

줄기는 시간의 두께를

묵묵히 쌓고 있다.



잎이 번진 끝에

하늘이 내려와

뭉게구름을 더듬고 있다.


그 하얀 구름을 안고

보이지 않는 흙 속으로

흔적 없이 묻히고 싶다.



모두 내려놓고

말없이 뿌리 쪽으로 돌아가



잠시라도

누군가의 숲이 되고 싶다.







여름숲에 서면

그 풍성한 그늘 아래 서면

숲이 품은 많은 것들이 보인다.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조용히 꽃을 피운 풀과 나무들

새소리

살아있는 생명들의 몸짓,

그 아래 깊게 쌓여있는 낙엽.

바람이 없어도 좋다.


바람 불어

잎새들이 떨며 내는 소리를

듣는 일은

더 좋다.

모든 것이 더없이 풍성해서

이 또한 언젠가 사라질 것들이란

슬픔조차 잊게 되는 여름 숲.

숲은 스스로의 그림자를 안고

모든 것을 품에 안고 있다.


죽은 낙엽으로 다른 생명을 길러내고

견딘 시간만큼 그늘을 드리운다.

여름숲은

오래전 묵묵히 안아주던

부모님의 깊고 넓은 품이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사소한 어떤 것도 버리지 않고

죽음과 삶을 함께 품어

결국 돌아오는 생명을 반긴다.

나도

여름 숲처럼,

누군가를 그늘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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