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가 떨어지면
오디가 떨어지면
땅위에 떨어진
오디 한 줌에
손끝보다 먼저
마음이 물든다.
너에게 닿지 못하고
혀끝에서만 피어난
작고 검은 계절
몇 번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추억이
이제 내 안을
보랏빛으로 채운다.
어떤 기억은
지우려 할수록
더 짙어지니
입술에 번진 보랏빛처럼
말하지 못한 마음 하나
그 여름에 남겨 두고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지금도
너는 내 안에 물들어있다.
비탈진 산길에 오디가 떨어지면
여름이 왔다는 신호이다.
오디 한줌을 입에 넣으면
입술보다 마음이 먼저 보랏빛으로 물든다.
모든 열매는
자신의 소멸을 위해
가장 찬란한 색을 고른다는 생각이 든다.
추운 지방에서 자라
어릴 적 오디를 먹어본 적은 없지만
오디를 맺는 뽕나무 잎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있다.
여름방학마다 외갓집에 가면
양잠(養蠶)을 하는 별채가 있었고,
누에가 뽕잎을 갉아먹는 모습이 신기해서
넋 놓고 지켜보곤 했다.
어느날
별채에서 깜박 잠들었다가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에 깨어난 기억이 있다.
사각사각—
그 소리가 얼마나 크던지
오직 나만의 특별하고 귀한 추억이다.
매일 뽕잎을 한짐 지게에 지고 오시던 외삼촌의 모습은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산업화 시절,
우리나라 수출의 10%를 차지하던
그 시대의 역군은 다름 아닌 뽕나무와 누에였다.
뽕나무의 생명력은 놀라울 만큼 질기다.
아무리 뽑아도 이듬해 또다시,
여기저기서 싹이 돋아난다.
뽕나무는 중국산 명품인 실크를 만드는 재료였던 누에의 좋아하는 나무로
비단이 ‘차이나(China)’라는 이름의 기원이라는 학설도 있다.
(고대 그리스·로마에서 중국을 가리키던 명칭 중 하나는 Serica(세리카)였는데,
Serica = “비단의 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고급 옷감을 사고팔기 위해 상인들은 대륙을 오가며
세상에서 가장 긴 길인 실크로드(Silk road)가 생겼다.
오디 한 알
손에 들었을 뿐인데
누에가 잠들던 외갓집
그리고
실크로드(Silk road)의 광활한 길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람 훌쩍 지나간 후
오디가 떨어진 산길에서
입술에 번진 보랏빛 마음
세상을 물들일 것 같은 추억이 살아나는 맛
지워지지 않는 건
얼룩이 아니라
그리움이었다.
오디(뽕나무))꽃의 꽃말
지혜, 봉사, 이루지 못한 사랑
뽕나무 이름의 유래
뽕나무 열매(오디)가 달고 맛이 좋아 많이 먹으면 방귀를 뽕뽕 뀌게 되어 뽕나무라 불렀다고 한다.
오디 효능
- 갈증을 해소하고 당뇨 증상을 완화, 뽕나무차를 꾸준히 먹고 당뇨를 고쳤다는 사람들이 있음
- 간·비장·신장 등 장 기능을 개선하고 소화 촉진
- 시력과 청력을 밝게 하고, 노화를 방지
- 장복하면 허기를 덜 느끼게 하여 기력을 보충
한시
원진사(蚖珍詞) - 다산 정약용
기상(氣桑)이 좋다 해도 지상(地桑)만 못하거니
한 뙈기만 심어도 열 집 옷은 나온다네
노상(魯桑)이랑 형상(荊桑)이랑 심을 만한 뽕나무
붉은 오디 까마귀가 물고 가게 하지 마라
누에치기 역사
누에치기는 중국 서릉씨가 시작했으며, 서릉신은 누에의 신으로 숭배된다.
인류는 4,500년 전부터 누에고치에서 비단실을 뽑아 옷을 지었고, 우리나라에서도 4,000년도 훨씬 전 고조선 시대에 양잠이 시작되었다.
고구려 동명왕과 백제 온조왕 때부터는 뽕나무를 키워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는 일은 농업과 함께 농상(農桑)이라고 하여 나라의 근본으로 삼았다.
조선시대에 궁궐이 온통 뽕나무밭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서울의 잠실(蠶室)은 누에를 짜던 마을이었다.
임도보고 뽕도따고
누에치는 여인 잠녀(蠶女)는 중국 전설 중 하나로, 말가죽과 융합한 소녀가 누에로 변신해 세상에 비단을 가져왔다는 전설이다.
잠녀 전설의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동진의 간보가 쓴 『수신기』에 기록되어 있다.
옛날 어느 집의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고 집에 그집 딸과 말만 남았다.
딸은 아버지가 그리운 나머지 말에게 아버지를 데리고 오면 아내가 되겠다는 약속을 했고, 말이 달려나가 아버지를 데리고 돌아왔다.
그리고 딸이 말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하자 자초지종을 알게 된 아버지는 화가나 말을 죽이고 그 가죽을 벗겨 나무에 걸었다.
그 뒤 딸이 말가죽을 걸린 곳을 지나갈 때, 말가죽이 갑자기 튀어올라 딸을 감싸안고 가버렸다.
며칠 후 딸은 말가죽과 하나가 되어 큰 나무의 가지 사이에서 누에로 변신해 실을 토하고 있었다.
그래서 뽕나무를 죽을 상(喪)과 음이 같은 뽕나무 상(桑)으로 부르게 되었다.
그 후 딸은 ‘마두낭(馬頭娘)’이라 불렸으며, 누에치기 여신으로 모셔진다.
외출도 사랑도 어렵던 고대사회에서 여자들은 누에에게 먹일 뽕잎을 따러 공식적으로 밖에 나갈 수 있었다.
그래서 뽕밭은 남녀가 몰래 만나 사랑을 나누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여자들이 남자를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뽕밭이었고, ‘뽕도 따고 임도 본다’는 말이 생겼다.
뽕밭에서 사랑이 시작되는 사례는 중국의 고대시가집인 『시경』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사성어
상전벽해 (桑田碧海)
"뽕나무 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라는 뜻으로,
세상 일이 몰라보게 변하거나 환경이 크게 바뀌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