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밤꽃 아래서

by 보리

밤꽃 아래서



여름밤이 더울수록

숨길 수 없는 것이 많다



등허리 흘러내린 땀처럼

이 계절은

쉽게 잠들 수 없다는 걸



사정없이 쏟아진

하얀 꽃더미 아래

달빛보다 먼저 내려앉은

비릿한 유혹에

바람도 젖어 있다.



소년의 입김 같은

질퍽한 향기로

바람을 흔들어

당당히

욕망을 꽃피운다.



멀리

산비둘기 울음소리에 묻힌

이 계절의 외로움



피는 것도,

견디는 것도

어쩐지

조금은 외롭다.


밤꽃1.jpg






내 고향은

추운 곳이라

밤나무가 자랄 수 없었다.


오랫동안

밤꽃 향기의 정체도 모른 채

살아왔다.


밤나무가 많은 이곳

여름이 시작되고

밤꽃이 무더기로 피어

여름마다 그 냄새를 만났다.


불러낸 적 없는 여름밤

끈적한 숨결 같은

밤꽃의 향이

허공에 사정없이 흩어진다.


공기마저 눅눅하게 젖는 밤

밤꽃이 스스로를 쏟아내듯

잎사귀 사이로 새어 나온

비릿한 유혹


터질 듯 노골적인

밤꽃은

그저 때맞추어 피었을 뿐인데


누군가 몰래

그 향기에 걸려 넘어지는 소리

풀숲 어디선가

들리는 듯하다.


밤꽃 아래에서

누구라도

외롭지 않은 이 있겠는가





밤꽃 꽃말


희망





밤꽃 향기의 정체



밤꽃의 향기에서 나는 비릿하고 진한 냄새는,

정액 냄새와 유사한 화학물질(Spermine, Spermidine) 때문으로

곤충을 유인해 수분을 돕는 역할을 한다.


생식과 번식이라는 자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진화적 향기 전략이다.


밤꽃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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