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백하(二道白河) Ⅰ-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물소리를 듣다.
이도백하(二道白河) Ⅰ
- 단군왕검(檀君王儉)의 물소리를 듣다.
하눌님이 세상을 펴고
천지 앞에 무릎을 세웠다.
한 손엔 해,
한 손엔 달을 흔들어
백하(白河)를 둘로 나누어
서쪽엔 바람을,
북쪽엔 구름을 실어 보내니
별보다 빛나는
그 물줄기
달문을 넘어
세상의 무릎으로 내려오다.
비룡폭포로 떨어지니
하늘을 찌르며
용 한 마리 솟구쳐
오른 후
눈꽃 젖은 언덕마다
바람과 구름이 자란다.
흰 옷 입은
두 줄기 강이
백두의 젖줄이
산허리를 감고 돌다
등허리에 따뜻한 땀방울로 맺힌다.
천지(天池)가 눈 비비는 아침,
하늘은
백두산 그림자를 안고
두 손 모아 들꽃을 기른다.
곰과 사람이
함께 물 마시던 시절
따뜻한 심장을 가진
사람들이 살던
푸른 나라
사람이
하늘의 마음을 빌려
이 땅으로 내려왔다.
백두 아래 첫 동네,
이도백하에 도착했다.
백두산 그림자 앞에
가슴이 먼저 뛰었다.
하늘이
먼저 내려다본 산
태백이라 불리던
그 이름 깊은 백두
신단수 아래
바람이 무릎 꿇고
달빛은 물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곰이 사람이 되고
사람이 하늘을 품어
하늘이 사랑한
두 갈래의 흰 물줄기—
산을 껴안고
마을을 적신다.
신시(神市)의 맹세
이도백하의 물결 속에서
애타는 그리움으로
강을 따라 흐르고 있다.
이도백하(二道白河)
이도백하(二道白河)는 ‘두 갈래의 하얀 강’이라는 뜻을 지닌 지명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물, 성스러운 발원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중국 지린성 연변조선족 자치주 안투현(安图县)에 위치하며,
백두산 천지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들이 모여 흐르는 첫 마을을 부르는 명칭이기도 하고,
북파 입구(장백폭포 매표소)까지의 거리는 약 34km로 백두산 북파 관광의 관문이다.
고구려·발해와 조선족의 역사
이도백하 일대는 역사적으로 고구려와 발해의 북방 영토에 포함되었으며,
백두산 자락은 신성한 산악지대로 인식되어 제례·방어·교통의 요충지 역할을 했다.
19세기 이후 조선인들의 두만강 너머 대규모 이주가 이뤄지면서
조선족이 정착해 마을과 공동체를 이루었고,
이 지역은 조선족 문화의 흔적과 민족 정체성을 간직한 곳으로 남아 있다.
단군신화
단군신화는 단순한 전설이나 영웅담이 아니라,
민족 기원과 철학적 국가이념(민본주의) 및 신성한 통치 정당성이 모두 담긴
매우 고유하고 정합적인 건국 신화이다.
이러한 건국신화의 구조는 세계적으로 매우 희귀하며,
오늘날까지도 대한민국 헌법 전문, 교육이념, 문화 정체성 속에 살아 있다.
“단군(檀君)”은 고조선을 세운 우리 민족의 시조(始祖)로
《삼국유사》 고조선조(古朝鮮條)에 따르면,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와 신시(神市)를 열고,
곰이 사람이 되어 단군을 낳아 고조선을 세웠다고 전한다.
《세종실록 지리지》, 《대동지지》, 《고려사》 등에서는
“태백산 = 백두산”으로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단군신화의 시작은 백두산 천지 부근”이라는 해석이
남북한 모두에서 통설로 인정되고 있다.
백두산은 오늘날까지도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하늘과 인간이 만난 신화적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고조선의 건국이념: 홍익인간(弘益人間)
홍익인간(弘益人間)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고조선의 건국이념이자 통치 철학이다.
이는 개인보다 공동체의 이익과 조화를 중시하는 민본적 사상을 담고 있으며,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 이념 및 국가 윤리관의 뿌리로 계승되고 있다.
비록 《삼국유사》에는 ‘홍익인간’이라는 문구가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단기고사》·《세종실록 지리지》·《제왕운기》 등의 문헌에서
단군의 통치이념으로 명시되어 있다.
이도백화 전설
옛날 옛적, 백두산 기슭의 작은 마을에 성수라는 착하고 효심 깊은 소년이 살고 있었다.
가뭄이 심해져 마을은 물도 곡식도 없어지고, 조정에서는 곡식 상납을 요구한다.
그러나 가난한 성수는 낼 곡식이 없어 다섯 냥의 벌금형을 받고 관아로 끌려갑니다.
성수는 관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괴롭힘 당하던 봉황을 구해주게 되는데,
그 봉황이 하늘로 올라가 그의 착한 마음을 옥황상제에게 고한다.
옥황상제는 성수를 불러
“소원을 말하라”라고 하고,
성수는 자신의 부귀나 목숨이 아닌,
마을 사람들을 위해 물줄기를 내려달라고 청한다.
그 소원에 감동한 옥황상제는
백두산 천지의 물을 두 갈래로 나누어
이도백하(二道白河)를 흐르게 하여
백두산 아래 농부들은 더 이상 가뭄없이 농사를 짓고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로부터 이도백하 마을은
하늘이 내려준 물길 위에 세워진 성수 효자의 전설을 품은 성스러운 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