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담쟁이
이 세상
어디에도 발 디딜 데 없다며
누가 먼저 포기했더냐
그림자도 헝클어진 오후,
회색벽의 심장을 열어
떨림 하나까지 모아
푸른 속살을 눌러 심는다.
줄기마다 숨겨둔 끈적한 욕망으로
허공도 뿌리 삼아
싸락싸락 먼지까지 씹어 삼키며
한 뼘씩 덩굴손 뻗어
구름의 발목,
빛의 팔꿈치를 엮고
지평선조차 접어 놓아
떠나는 것들이 다시는 돌아보지 못하게
잎사귀로 눌러둔다.
마디마다 돌벽에 입 맞추고
바람도 뿌리에 묶어
생명의 맥박을 옮겨
끝끝내 세상을 안아야 멈춘다.
왜 모르랴
돌담이 아무리 높다 한들
푸른 숨을 길어 올려
내 어깨 디디고 너의 창가까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길을 새긴다.
벽에 남은 쓸쓸한 돌냄새가
천천히 어둠을 절구질하면
떼어낼 수 없는 천년의 생이
허기진 하루가
다시 기어오른다.
눈치채지 못할 만큼 느리게
그러나 한 번도 물러서지 않고
담쟁이는 바람과 돌을 묶어
간절한 절규로 세월을 기어오른다.
바람보다 느린 속도로
스스로를 묶어 올리는 법
휘청이는 순간마다
떠나는 햇살도 되돌려 매단다.
집념이 구부러져
구름의 발목을 끌어당기고
기억의 가루를 돌벽에 덧붙인다.
초록 실로 구름을 당겨 묶고
빛의 모서리를 감아올리며
허공의 먼지를 마시며
돌의 침묵을 부드럽게 바느질한다.
돌틈의 어둠에도 지문을 남기며
세상의 모든 틈을 갈피 삼아
빛과 그림자를 엮어두고
바람 한 줄기까지 끌어안고
붙잡힌 모든 순간이 초록으로 번져
세상은 느린 포옹 속에 잠긴다.
이파리마다
하늘과 땅까지 발아래로 끌어당기고
떠나는 시간의 옷자락을 붙들어
완고한 초록의 기억을 새긴다.
간절한 생의 집착이
잎 끝에서 흔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