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잡초

by 보리

잡초



너는

너의 자리에 서 있느냐?



땅 끝이어도 좋다.

밟히고 밟힌

여기가 이미 내 고향.



무릎 꺾인 채 쓰러져도

숨 하나

바닥 끝까지 끌어당겨

살아남으려



먼지와 이슬 삼키며

세찬 발길 야래에서도

질긴 숨

놓지 않았다.



비바람 몰아쳐도 좋다

하늘과 땅이 젖으면

함께 젖어

뿌리에 뿌리를 부비며

젖은 땅을 기어간다.



누가

이 자리를 허락했느냐

묻지 마라.



들판을 초록으로 물들이기엔

나만큼 어울리는 건 없다.



누가 내 이름을 묻거든

바람의 발자국을 이어 붙여

언제나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는



여기 있었다고

다시

올 거라 말해다오.



너도

그냥

너의 자리에 서 있으라.


잡초2.jpg 양파를 거두고 난 후 이주만에 큰 밭을 덮어버린 잡초






잡초라고 부르지만

그 자리에

너만큼 어울리는 건 없다.


이름 없는 것도 생명이다


길 잃은 하루가 고개 숙이면

잡초는 발밑에서 먼저 고개를 든다.


세찬 비바람이 지나간 자리

쓰러져 누운 꽃 옆에

굳세게 다시 목을 세운 잡초


스스로를 안아서

스스로를 끌어당기며

언제라도 다시 오겠다 한다.


오늘도

잡초를 뽑다가

체념의 한숨이 나온다.


나도 그냥 잡초가 되어

저 자리에 서있고 싶다.


잡초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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