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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란 Jul 06. 2017

디엣 /

때 이른 한낮의 더위가 입기 싫은 옷처럼 달라붙고 있었다.

그는 나를 길들인다고 말했다.

싫으면 억지로 강요하지 않을 거라면서도

분명 천천히 나를 길들여갈 것이라고.

순간 부드럽게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자상하긴 한데.. 부드럽긴 한데..

강요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게 문제도 아니었지만,

왠지 그와 말을 할수록 나는 조금씩 이상해져버리는 것 같다.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아니 이건 나에게 맞는 옷을 찾아가는 느낌인가.

어느 쪽도 깊이 원하고 있지 않는 나의 감정이 왠지 더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는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그 세계를 분명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저 행위가 아닌 사람으로 남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그는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셈일까.

자상하고 부드럽고, 큰 존재 같은 무엇이 나를 집어삼키려 하는 것 같다.

선택의 기회를 주며, 아주 천천히..

잡아먹힐지, 아니면 도망을 갈지 머리를 굴려보지만,

그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간에 나를 놓아주지 않을 거 같다.

이미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 같아 보였다.


이제 우리의 만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행될지도 모른다.

싫다고 말해도 그는 내가 아직 잘 모르는 거라 말하며, 나를 가둬두려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런 관계,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건가.

이 여름, 대체 무엇을 믿고 이렇게 설쳤을까.

 

그리고 갑자기 궁금한 것.

그는 기대했을까.


내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랬다면 그건 얼마만큼 간절한 것이었을까.

언뜻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 여부가 왠지 아주 결정적일 것 같은 개 같은 날의 오후.


한참 말이 없던 그는 기다리겠다는 말로  나를 길들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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