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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빚

20살의 꿈을 놓아주며 배운 것

by 쏭저르

20살의 나는 공연기획이라는 길을 꿈꿨다. 학과를 정하고, 공부하며, 실습을 통해 길을 닦아가면서 좋은 기회를 기다렸다. 중간중간 작은 기여를 할 기회도 있었지만, 나의 역할은 모금, 즉 재정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문화예술계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며 기여하는 것, 그것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수년 전,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극장에서 모금을 담당할 기회를 스스로 놓아야 했다. 외부에서 경력직 채용이 진행된다는 소식에 내부 직원들의 반발이 있었고, 나는 그 상황을 감수하며 물러섰다. 당시에는 그 선택이 옳았지만, 마음 한편에 남은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후로 시간이 흘렀다. 나는 모금 업무를 통해 다양한 단체들의 재원을 마련하고, 협력의 모델을 만들어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다른 곳에서 펼치며 여전히 필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20살의 나에게 빚을 진 듯한 기분이 계속 남아 있었다. 그때 품었던 꿈을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는 아쉬움 때문이었다.


이제는 그 마음의 빚을 내려놓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모든 걸 해결할 수도 없고, 내가 외쳤다고 세상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배웠다. 하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내 자리다.


40살이 된 나는 20살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수고했다. 그리고 그 열정과 믿음을 안고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 너의 꿈은 결코 헛되지 않았고, 그때의 노력과 시간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


늘 놓아줬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진짜로 놓아주는 기분이다. 20살의 나를 향한 마음의 빚은 이제 없다. 꿈은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내 삶을 채웠을 뿐이다. 인생은 필요한 물줄기대로 흘러간다. 그렇게, 나는 나의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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