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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Oct 05. 2023

잠옷 입고 스타벅스 DT 갑니다

[100일 100 글]100일, Final

운전대를 잡자마자 나에게는 한 가지 로망이 생겼더랬다. 잠옷 바람으로 차를 타고 나가 DT로 커피나 햄버거를 사보는 것. 일상복이 아니라 꼭 잠옷을 입고 나가야 한다. 가방 대신에 차키와 지갑만 들고, 아침이 아닌 저녁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툭’ 말이다. 


왜 이런 묘한 로망이 생겼는가 하면, SNS에 자신의 일상을 올리는 브이로거 분들의 영향이 크다. 그들의 영상을 보면 차키와 지갑만 들고나가 커피를 사거나 장을 보러 가는 장면이 왕왕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시크하고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아직 철이 없어서인지, 허세가 넘쳐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평범한 일상이 몹시 특별해 보였다. 운전이 서툴렀던 내가 가지지 못한 일상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한동안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나날이 지나, 그렇게 추석 연휴가 왔다. 유독 정신없었던 일정을 보낸 후 집에서 쉬던 어느 날. 분명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눈을 감았다 뜨니 오후 5시가 넘어있었다. 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뉘엿뉘엿 어두워지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는데 문득 촉이 왔다. 지금이다. 지금 나가야 한다. 


아직 야간 운전을 많이 해본 적이 없어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의 난 운전 경력 8개월의 드라이버.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고민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차키와 지갑, 텀블러를 챙기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니 얇은 재킷 하나만 걸친 채 집 밖으로 향했다. 다행히 아무도 만나지 않고 차와 접선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목적지는 편도 30분 거리의 스타벅스 DT. 집 근처에도 DT가 있으나 이왕 나가는 거 드라이브도 할 겸 다리 건너로 다녀오자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 점점 어두워지는 길거리가 걱정이 되기도 했으나 한강 위로 보이는 노을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다. 절로 감탄사가 나올 만큼 말이다. 밤바람도 좋아서 창문을 조금 내리고 달리는데 이상하게 실실 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들뜨고 설레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스타벅스 DT에 무사히 도착한 후, 준비해 간 텀블러에 아이스 카페 라테를 주문하는 것에 성공했다. 도로로 나가기 전 한 모금 들이키는데 시럽도 들어가지 않은 커피가 어찌나 달게 느껴지던지. 다시 집까지 돌아오는 길에는 흥얼흥얼 노래도 흘러나왔다. 그날은 굉장히 뿌듯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난 그날 왜 그렇게 기분이 좋았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날은 내가 처음으로 상상만 하던 나의 로망을 실천한 것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로망은 이것만이 아니었을 건데 행동으로 움직인 것은 정말 처음이었다. 마음에 있던 작은 것을 그냥 해봤을 뿐인데 아드레날린이 훅 도는 것이 느껴졌다. 


이래서 하고 싶은 건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는 선에서 다 하면서 살라는 것인가 싶었다. 그냥 잠옷만 입고 최소한의 물건만 챙긴 채 집 밖으로 나왔을 뿐인데, 이렇게 힐링도 되고 스스로에게 뿌듯한 감정도 드니 말이다. 새삼 행복이 별거 아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그동안 나에게 얼마나 무심했는가도 다시 깨닫게 되었다. 


내 안에서 들리는 작은 목소리를 대충 듣지 않고 조금만 귀를 기울인다면,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 세팅된다. 거기에 약간의 행동력만 부여해 보자. 전혀 다른 삶이 이어진다는 것도 마냥 과장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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