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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n 24. 2023

진짜 쉰다는 것

[100일 100 글]16일, 열여섯 번째 썰

오늘 245km 떨어진 곳에 사시는 외할머니 댁에 왔다. 주말 늦은 오전에 출발했기에 휴게소에서 쉬는 시간까지 더해 총 5시간의 대장정이었다. 저번에 내가 운전해서 왔기에 오늘은 엄마가 운전하는 차에 실려왔다. 2주 전에 왔을 땐 당일치기로 다녀와서 이곳에 있던 시간이 2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 3시간 넘게 운전하고 와서 3시간 넘게 운전해서 돌아갔기에 그날의 기억은 몹시 혼미하다. 그래서 오늘은 자고 오기로 엄마와 협의를 완료했던 상황. 어쩐지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어느덧 한여름이 온 6월. 덥다 못해 뜨거운 공기에 모공들이 열려 휴게소에 잠깐 내렸을 때 온 온몸이 끈적거려 혼났다. 중간에 막히는 길들이 답답하고 지겹고 유리창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에 무릎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신경 쓰였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내가 선호하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기에 보통 같으면 몹시 날카로워지는 것이 내 기본값이었다. 그런데 제법 마음이 가벼웠다. 길고 긴 여정 끝에 할머니 집에 당도했고, 할머니는 2주 전에 만났음에도 몹시 반가운 목소리로 우리를 반겨주셨다. 


오느라 고생했다며 웃으시는 모습에 마음이 퐁신퐁신해졌다. 차의 뒷좌석이 가득 차도록 가져온 짐들을 나르느라 난 또다시 땀범벅이 되었다. 입고 온 청바지가 땀을 먹어 불편하게 허리에 걸쳐졌고 셔츠가 등에 들러붙었지만 짜증은 나지 않았다. 또다시 흐른 땀을 차가운 물에 씻어낸 후 방 안에 눕고 나서야 새삼스러운 것을 깨달았다. 


아, 나 쉬고 있구나. 


과거 언제나 일처럼 해치웠던 주말의 스케줄들이 머릿속에 둥둥 떠올랐다.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보고 맛집에 끌려 다니면서도 난 생각을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머릿속의 끝자락에 매달려 있던 돌아올 월요일에 처리해야 할 일들과 해결되지 않은 일들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오늘의 나는 어땠지? 돌이켜보면 그 순간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고 있었다. 길은 막히지만 엄마와 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었고, 무척 덥지만 내 손에는 차가운 아메리카노가 들려있었다. 뜨거운 햇빛이 조금 힘들었지만 살갗을 달래주는 선선한 바람이 있었다. 땀이 나서 기분이 별로였지만 곧 차가운 샤워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을 하니 불편하고 불필요한 생각이 없어지고 어깨가 가벼워진 것이다. 어쩐지 진정으로 쉬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생각과 지금이라도 방법을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부디 많은 이들이 스스로에게 진정한 쉼이 어떤 것인지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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