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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n 28. 2023

게으른 것이 아니라 기를 모으는 중입니다.

[100일 100 글]20일, 스무 번째 썰 

난 부지런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회사 출근 시 지각은 하지 않지만(지하철 고장 시 예외) 많은 보스들이 원하는 근무시작 10분 전 출근은 한 적이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최선을 다해 버틸 수 있을 만큼 침대에서 뭉갠다. 그리고 이 이상은 곤란하다 싶을 때쯤 일어난다. 


난 잠이 많은 편이 아니다. 하지만 멍 때리면서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꽤 된다. 주말도 마찬가지이다. 눈을 뜨면 일단 시간을 확인한 뒤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있다. 결코 쉽게,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다. 내 월급처럼 작고 소중한 양심이 그래도 지금은 일어나야 하지 않겠냐 할 때까지 버틴다. 


외부에서는 내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는 편은 아니지만 간혹 사회생활 시 취미나 특기가 뭐냐고 물어보면 난감할 때가 있다. 평범한 사람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데 대뜸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상대방이 얼마나 당황하겠나. 그것에 대해 평가받는 것도 사절이기에 언제나 대충 얼버무린다. 최근에 운전을 시작한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간혹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말한다. 우리 아빠가 특히 그러신대, 집에서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신다고 한다. 주말에는 쉴 법도 하신데 결코 쉬는 법이 없으시다. 나는 살면서 우리 아빠만큼 부지런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아빠는 나에게 질문을 던지실 때가 있다. 누워만 있는 거 안 지겹냐고. 나는 하늘이 두 쪽 나도 그럴 일은 없다고 답한다(답을 들은 아빠는 잘났다,라고 칭찬해 주신다). 


파워내향인인 나에게는 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몹시 소중하다. 한 번 바깥을 나가는 것에 온몸의 에너지를 쥐어 짜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시간낭비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다. 가만 보면 게을러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코 그렇지 않다. 만화 드래곤볼의 주인공 손오공이 원기옥을 모으듯이 에너지를 모으는 것이다. 바깥에 나가서 지치지 않게 말이다. 


그러니 가만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잠시 기다려주는 시간을 갖자. 지금 저 사람은 바깥 활동할 기를 모으는 것이고, 그 응축된 기와 시간을 누구보다 멋지고 알차게 쓸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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