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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l 04. 2023

미니멀리즘,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100일 100 글] 26일, 스물여섯 번째 썰

어느 성공한 인물이 내가 지내는 방의 상태는 내 정신 상태와 같다고 했다. 깨끗한 방을 유지하면 깨끗한 정신이 유지된다는 주장이었다. 방을 한 바퀴 휙 돌아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족집게 찾는 것도 어려워 그렇게 단행한 방 정리. 조금은 정돈된 정신으로 생활하고 싶어 시작했는데 조금 난처한 상황에 빠져버렸다. 


분명 나는 방을 치웠다. 제법 후련하게. 팔 것도 다 내보냈고 눈에 보이는 것 없이 싹 치웠다. 그러니까, 눈에만 보이지 않는다. 사실 말이 좋아 방 정리지, 실상은 옷장과 서랍장, 책장 사이사이에 쑤셔 넣은 잡동사니가 아직 한 가득이었다. 그래서 흐린 눈을 하고 보면 내 방은 제법 정돈되어 보인다. 음, 정말 그렇다. 


하지만 내보내야 할 것들이 한참 남아있는데 눈에 보이는 곳만 깨끗하니 언제나 마음 한 구석이 찝찝했다. 치웠는데 실상은 아니니까. 아무래도 물건들을 확실히, 제대로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날 나는 내 방 모든 서랍과 옷장의 문을 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렬히 실패했다. 


잔뜩 쌓여있던 만년필 잉크와 카트리지는 앞으로 계속 쓸 거니까 제자리에. 절반 밖에 쓰지 못한 손바닥 사이즈의 일기장들은 내 추억이니까 버릴 수 없다. 역시 제자리에. 각종 보증서들과 화장품 샘플들도 당연히 그대로 둬야 한다. 다시 쓸 거니까 제자리에. 


각종 약들도 마찬가지이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 쟁여둔 상비약들도 버릴 수 없다. 각종 영양제들도 다 먹을 거니까 함께 놔둔다. 단발머리여서 쉽게 지저분해지는 머리를 단정하게 잡아줄 핀들도 이쪽에 모셔둬야지. 어깨와 목이 좋지 않아 사둔 마사지 도구들도 치료(?)가 목적이니 버리지 않는다. 


열심히 사둔 책들은 언젠가 읽을 거니까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중고장터에 내놨다가 다시 생각나서 사려면 그것도 큰일이니까. 시즌마다 사둔 텀블러들도 돌아가면서 사용 중이므로 그냥 놔둬야겠다. 코로나가 한창일 무렵 사둔 소독제들도 청소할 때 쓰면 되니까 다시 넣어둔다. 


이런 식이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방 정리가 실패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각종 SNS에서 보이는 깨끗한 방들은 대체 어떻게 하면 나오는지 정말 진심으로 신기하다. 나와는 영원히 인연이 없을 것 같은 방들이라 더 그렇다. 대체 어떻게 집안에 물건들을 저렇게 쉽게 정리하시는 거지? 


내 책장에 꽂혀 있는 손자병법에 보면 이러한 구절이 있다. 싸우기 전 계산하라. 철저히 계산하고 최대한 많은 묘책을 강구하면 이긴다는 뜻이다. 그러니 일단 지금은 1보 후퇴. 이것은 포기가 아니라 1보 전진을 위한 전략적 후퇴이다. 조금 거리를 두고 지켜보다 보면 완전한 정리에 대한 길이 보일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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