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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l 05. 2023

한 여름에는 미지근한 보리차 한잔

[100일 100 글]27일, 스물일곱 번째 썰

숨쉬기 힘들 만큼 무더운 여름. 나에게는 몹시 힘든 계절이다. 믿거나 말거나, 1월에 태어나서 그런지 몰라도 유독 힘들다. 특히 요즘 같은 장마철에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 자체가 큰일이다. 습도가 높아 답답한 공기 때문에 새벽에 한 번은 꼭 깬다. 눈을 떴다가 다시 감았을 때 잠들면 그날은 괜찮은 것. 하지만 그러지 못한 날이 더 많아 매일 피곤하다. 


더운 공기 때문에 흘리는 땀만큼 몸에서 기력도 함께 빠져나간다. 그래서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으면 분단위로 지친다. 그래서 아침 출근 후, 내 자리에 놓여있는 탁상용 선풍기를 제일 세게 틀어놓고 그 앞에 멍청하게 앉아있는 것이 내 아침 루틴 중 하나이다. 


그것뿐이면 여름 보내기가 그나마 수월 할 텐데. 밤새 먹은 것이 없음에도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속이 더부룩하게 불편하다. 그럴 거면 배고프지도 말아야 하는데 눈치도 없어서 끼니때만 되면 놓치지 않고 신호를 보내온다. 진짜 미칠 것 같다. 여름이라 더 기력이 없어지면 안 되니 밥은 먹는데 조금만 먹어도 더부룩해지니 이맘때쯤이면 소화제를 달고 산다. 


그렇게 좋아하는 커피도 절반으로 확 줄인다. 하루에 커피를 2잔밖에 마시지 못하다니. 직장인에게 이보다 더 큰 시련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하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 울며 겨자 먹기로 커피를 줄인다. 디카페인 커피도 마셔봤지만 나에게 무알콜 맥주만큼이나 대면하고 싶지 않은 존재이다. 


이렇게 매년 여름마다 속이 불편하니 언제나 대체품을 찾아 헤맨다. 주로 집에서 만든 매실청으로 만든 매실차를 마시는데 설탕이 들어가다 보니 많이 마시면 조금 물린다. 그래서 올해 고민이 좀 많았는데, 우연히 유튜브에서 본 보리차. 순간 저거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한잔 보리차라고 대용량 보리차 티백이 아닌 한잔용으로 나온 티백이 있었다. 이 정도라면 사무실에서도, 집에서도 먹기가 좋을 것 같아 주문했는데 오. 이거 생각보다 물건이다. 


차가운 것은 속에 좋지 않으니 정수에 우리는데 슴슴하고 고소한 것이 입맛에 딱이다. 어렸을 적 엄마가 끓여준 보리차보다 연하지만 속을 다스리기에는 충분했다. 사약 같은 아메리카노에 익숙해져 있어 심심하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조금 텁텁한 끝맛이 커피의 그것을 잊게 도와줬다. 


요즘 Y2K가 유행이라더니, 이런 것까지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은 몰랐는데. 덥고 답답할 때는 커피처럼 강렬한 것보다 조금은 심심하고 미지근한 보리차를 마셔보는 게 어떨까. 강렬함은 없지만 포근하게 속을 감싸주는 것이 여간 편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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