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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l 12. 2023

비와 감정 그리고 한바탕 쏟아낸다는 것

[100일 100 글] 33일, 서른세 번째 썰 

장마시즌이다. 공기 가득 머금고 있는 물기 때문에 하루하루 꿉꿉하고, 무거운 공기 때문에 몸이 축축 쳐진다. 느린 걸음으로도 10분이 되지 않는 거리가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특히 어제는 비가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아 더 힘들었다. 


레인부츠를 신어 발은 답답하지, 그 와중에 해는 작열하듯 쨍쨍. 비가 오지 않아 습도는 한껏 올라가 있어서 곱절로 답답했다. 지하철에서 틀어주는 에어컨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휴대용 선풍기를 최대로 작동시켰지만 내 맘에 차지 않았다. 정말,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 너무 힘들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정말 미친 듯이 비가 왔다. 말 그대로 미친 듯이. 회사 근처 지하철역에서 나오자 저녁이라도 된 것처럼 하늘이 어두웠고 양동이로 물을 들이붓는 것처럼 비가 쏟아졌다. 커다란 우산과 장화를 신고 출근을 했지만 바지가 젖는 것은 막지 못했다. 늦었다 싶으신 분들은 바지를 포기하고 빠르게 실내로 들어가는 걸 선택하는 분들도 많았다. 


정말 하루 종일 비가 쏟아졌다. 퇴근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비가 더 많이 쏟아져서 걱정했는데 다행스럽게도 퇴근 직전에 비가 소강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이제 다른 게 걱정이 되었다. 습한 공기가 문제였다. 사무실에서 지하철역까지 거리가 좀 되기 때문에 땀범벅이 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땀이 많은데, 큰일 났구나 싶었다. 


지하철에서 땀 냄새 때문에 민폐를 끼칠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밖에 나왔는데 웬걸. 그렇게 질릴 정도로 쏟아내더니 그게 만족스러웠는지 덥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공기 때문에 선선할 정도였다. 이맘때쯤 느낄 수 없는 상쾌한 공기에 폐가 정화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지하철역까지 걷다 문득 힘들었던 5월의 어느 날이 떠올랐다. 회사에서도, 사생활에서도 스스로가 탐탁지 못하고 만족스럽지 못해 힘든 나날이었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그 때문에 예민해져 가고. 그렇다고 내 상황이 좋아질 기미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주변에 티를 내고 싶지 않아 혼자 속으로만 삭였었다. 몹시 미련했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 저녁을 먹던 식탁에서 모든 것이 빵 터져버렸다. 엄마가 가볍게 던진 말에 나 혼자 화가 나 그 자리에서 화를 내며 울어버렸다. 기어 다니던 시절을 제외하고 이렇게 엄마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는데. 창피하다는 생각도 못하고 엉엉 울었다. 제법 길게. 이 나이에 이렇게 울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다. 


수치사할 뻔했지만 겨우 이겨내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라? 조금 개운해진 느낌이었다. 예전 개그맨 신동엽 님이 화보촬영을 하며 눈물을 흘렸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고 하셨는데 이게 그런 느낌일까 싶었다. 속에 들어있던 돌덩이가 쑥 내려간 것처럼 숨이 트였다. 아, 이래서 감정은 안으로 썩히지 말고 표출해야 한다고 하는 거였구나. 갑작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막 쏟아낼 때는 이래도 되나 싶다. 하지만 막상 쏟아내고 나면 오히려 시원해지는 것들이 있었다. 적시적소에 쏟아 내줘야지, 담고만 있으면 좋지 않다. 비든, 감정이든 말이다. 


*비 피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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