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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l 14. 2023

소울푸드는 푹 끓인 돼지고기 김치찌개

[100일 100 글]36일, 서른여섯 번째 썰 

아침에 눈을 뜬 순간부터 속이 좋지 못했다. 어제 술을 마신 것도 아니고, 과식을 한 것도 아니었다. 장마철 한정 고질병 같은 것인데, 마치 공기에 속이 눌리는 것처럼 속이 메슥거린다. 그럴 때는 물만 먹어도 위가 출렁거리는 느낌이 든다. 명치 아래쪽을 툭 치면 모든 것을 게워낼 것 같은 불쾌한 기분이라니.  


출근을 하자마자 연한 커피부터 조심스럽게 들이켰다. 보통 몸을 조금 움직이면 속이 살짝 가라앉는데 거기에 커피를 마시면 임시방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급한 불을 끌 수 있다. 힘겨운 오전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점심시간. 보통 같으면 다른 동료들하고 같은 메뉴를 고르는 편인데 그들이 선택한 오늘의 메뉴는 중국음식. 이건 입에 대는 순간 큰 사고다. 본능적인 직감에 정중히 양해를 구하고 마음이 맞은 몇 명의 동료들과 김치찌개 전문 식당으로 향했다. 


가장 시원한 자리라며 안내받은 자리는 식당 정 가운데 있는 테이블이었다. 곧 둥근 테이블 위에 반찬이 차려지고, 밥과 계란 프라이가 올라간 양 손바닥 사이즈의 양푼이 배정되었다. 조금 공기가 썰렁하지 않나 싶을 때쯤 나온 돼지고기 김치찌개. 넓적한 웍에 김치와 고기가 잔뜩 올라가 있고, 그 위에 살짝 익힌 라면사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빨리 끓어라, 주문을 외며 기다리길 수분. 드셔도 된다는 직원분의 말씀에 국자를 들어 푹 익은 김치와 고기를 국물과 함께 떠 내 몫의 양푼에 가득 담았다. 센스 있게 인원수에 맞춰 주신 두부 한 조각도 빠짐없이 챙겼다. 재료를 슥슥 비벼 입안에 한입. 양쪽 턱 끝이 찌릿해옴과 동시에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이거지. 


잡내 하나 나지 않는 돼지고기는 어찌나 부드러운지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져버렸다. 잘 익은 신 김치 또한 물렁거리지 않고 적당히 서걱거려 일품이었다. 조미료를 넣지 않는 국물의 끝에 살짝 올라오는 마늘향까지. 누가 생각했는지 몰라도 메뉴 하나만큼은 잘 골랐다며 모두의 미간이 진실을 알리듯 찌푸려졌다. 동시에 오전 내내 메슥거리던 속이 칼칼한 국물과 함께 쑥 내려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숨이 제대로 쉬어지는 것이 살 것 같았다. 역시 김치찌개구나. 


나는 특별히 김치찌개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생각해 보면 언제나 김치찌개였다. 1년 동안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3주간의 출장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하다못해 짧은 여행을 마치고 나서라도. 뭐 먹을래?라는 질문에 언제나 김치찌개라고 답했다. 


소울푸드라는 단어만 들으면 뭔가 굉장히 특별한 음식을 떠올려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거 없다. 언제 먹어도 단전에서부터 뜨끈한 숨이 올라오는 위안이 되고 편안한 음식. 그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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