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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l 26. 2023

누가 이열치열 소리를 내었는가?

[100일 100 글]47일, 마흔일곱 번째 썰 

여름은 나에게 몹시 힘든 계절이다. 작열하는 태양 밑에 서있으면 아이스크림이라도 된 것처럼 맥을 못 춘다. 특히 요즘 같은 장마철은 최악. 숨이 턱턱 막히고 아침에 화장을 왜 했는지조차 의문일 정도로 땀이 흐른다. 슬픈 건, 아침에 샤워를 했는데 말짱 도루묵이라는 거다. 그러다 보니 매일 출근을 하자마자 2대의 선풍기 앞에서 약 10분 동안의 명상타임을 갖는다. 나 스스로와 땀을 모두 진정시키는 것이다. 필수다.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시간이다. 


그런 후 가지는 아아 타임. 얼음을 한가득 꽉꽉 눌러 담은 텀블러에 캡슐 커피 원액을 받고 그 위에 냉수를 또 가득 붓는다.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냉기가 식도를 타고 위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듯 쭉 내려간다. 이것을 위해 내가 출근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만족스러워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아, 참고로 5분 컷이다. 아침 회의 들어가기 직전에 한잔을 끝내고 두 번째 잔을 만들어 들어간다. 


내 주변에는 탁상용 선풍기 하나와 타워형 선풍기 하나가 있다. 타워형 선풍기는 주변 직원들과 공유하고 있고, 내 자리의 탁상용 선풍기는 9시부터 6시까지 쉬지 않고 돌아간다. 에어컨이 있지만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 직원이 있어 세게 틀지 못한다. 그 덕분에 내 자리 선풍기는 쉬지 않고 돌아간다. 


그렇게 이 혹독한 계절을 나던 중. 탈이 났다. 회사에 있을 때까지는 괜찮았으나 퇴근 후 헬스장에서 뛰는데 이상하게 머리가 어지러웠다. 속도 답답한 것이 헛구역질도 나왔다. 안 되겠다 싶어 서둘러 집에 돌아와 누워있는데 아차 싶어졌다. 높은 습도때문에 오늘 유독 얼음물을 많이 마신 것이 떠오른 것이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그냥 얼음물, 또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또 그냥 얼음물. 찬 것을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이 난 것이다. 똑 부러진 스스로에게 탄복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겨우겨우 기어서 씻고 나와 펄펄 끓은 김치찜 국물부터 들이켰다. 속이 안 좋은 나에게 자극적인 음식이었지만 집에 있는 뜨끈한 음식이 그것밖에 없었다. 에어컨과 선풍기도 그 순간만큼은 멀리했다. 찬바람 때문에 머리가 어지러웠기 때문이다. 이 한 여름에, 에어컨과 선풍기 없이 뜨거운 김치찜을 먹다니. 평소의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조합 아닌가. 


여러 가지 의미로 힘겨운 식사를 끝마치고 수분 뒤, 곧 속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다행히 심각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리 오래지 않아 괜찮아졌다.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선풍기를 트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였다. 찬 바람에 또 머리가 아플까 두려웠다. 


이열치열. 열은 열로써 다스린다. 나와는, 앞으로의 내 인생에서는 볼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몸으로 선조들의 지혜를 깨닫게 될 줄이야. 역시 조상님들은 위대했다. 덥다고 무조건 찬 것을 찾는 것은 몸의 메커니즘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몸 안팎의 온도의 균형을 찾는 것. 뭘 하던 한쪽에 치우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과유불급을 모른 죄로, 난 내일 얼음의 양을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많이, 아주 많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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