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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l 27. 2023

가끔 혼자 점심을 먹습니다.

[100일 100 글]48일, 서른여덟 번째 썰

직장인이 된 지 올해로 7년 차. 그동안 나는 몇 번의 점심을 먹었을까. 딱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굳이 세어보지 않아도 엄청난 숫자일 것임은 틀림없다. 대충 근처 분식집에서 라면과 김밥을 먹기도, 거래처분들과 좋은 레스토랑에서 칼질도 한 적이 있었다.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에는 나가기 귀찮아 탕비실에서 소소하게 모여 떡볶이나 쌀국수를 시켜 먹을 때도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다.  


출근을 한 순간 내 점심시간은 내 것이되, 내 것이 아니다. 11시를 넘어가는 순간부터 점심으로 뭘 먹을지 단톡방이 소란스럽다. 회사에 구내식당이 없으므로 메뉴 선정은 언제나 전쟁이다. 근처에 식당이 많이 없어서 더 그렇다. 그렇게 힘겹게 메뉴를 고르고 12시가 되면 다 함께 엘리베이터 앞으로 순간이동을 한다.


식당으로 향하는 길, 자리에 앉아 식기와 물을 나르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모든 순간들은 수다와 함께 한다. 오디오가 빌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전 내내 정신없이 일하던 스트레스를 이 한순간에 폭파시켜야 하므로 더 바쁘게 입을 움직인다. 그러다 보면 1시간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러다 작년 가을. 외근 중 당한 접촉사고 때문에  병원에 다니느라 한 동안 점심을 혼자 먹어야 했다. 딱히 혼밥을 못하거나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으나 그동안 함께 했던 점심 메이트들이 없는 것이 조금 어색했다. 그래도 할 수 없으니 혼자 밥을 먹어볼까.


진료를 마치고 홀로 거리에 나와 처음 보는 식당에 들어갔다.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비어있는 테이블은 많았지만 굳이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했다. 혼자 앉아있는 스스로가 뻘쭘하게 느껴져 혼밥을 즐기는 시크한 도시여자를 연기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낯으로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배경음 삼아 창문 밖을 멍하니 쳐다보며 식사를 기다렸다.


그런데 왜일까. 어색했던 것은 아주 잠시 뿐이었고, 곧 그 순간이 묘하게 편해졌다. 심지어 약간 평화롭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내 입과 귀가 아주 오랜만에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시끄러운 식당 안에서 일행의 이야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던 귀도, 맞장구를 쳐주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던 입도, 모두 쉬고 있었다.


식사할 때도 마찬가지. 식사 속도를 맞추기 위해 눈치 봐야 하는 상황이 사라지니, 오롯이 나만의 속도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좋아하는 예능을 보며 천천히 꼭꼭 씹고, 맛을 느꼈다. 음식에 뭐가 들어갔는지 탐구도 해보고 반찬들과의 궁합도 혼자 조용히 점수를 매겨봤다. 옆에서 들리는 대화에 고개도 끄덕여보기도 했다. 아, 무엇보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나 혼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기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카페에 들렀다. 동료들과 자주 가는 곳에서 항상 커피만 주문했었는데 그날은 특별히 마카롱도 주문했다. 만날 들리는 디저트 카페인데, 정작 디저트를 제대로 시킨 적이 없었다니. 이 무슨 안타까운 일인가 말이다. 사무실에 돌아올 때도 평소 이용하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온다던지, 천천히 오던지 하는, 나름의 여유도 부렸다.


직장인이 된 지 올해로 7년 차. 그날 이후 나는 가끔 혼자만의 점심시간을 가진다. 하루 1 시간뿐인 나와의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내가 걷고 싶은 만큼 걷는다. 짧지만 근무 시간 중 가질 수 있는 최대치의 힐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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