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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l 28. 2023

차카게 살자

[100일 100 글]49일, 마흔아홉 번째 썰 

세상에는 어지르는 사람 따로, 치우는 사람이 따로 있다. 회사에서 난 주로 치우는 사람이다. 가장 막내 시절부터 하라고 하니 했고,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입사 초반 억울한 포지셔닝의 결과라고나 할까. 탕비실 테이블에 누구 하나 닦지 않는 커피 자국이 있다면 조용히 닦는다. 플라스틱을 넣어두는 봉투도 꽉 차면 내가 교체한다. 집에서도 잘 안 하는 정리를 회사에서 하고 있다. 


하기 싫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예전에 귀찮아서 탕비실 정리를 안 한 적이 있다. 누가 치울 때까지 한 번 기다려볼까 했다. 하지만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비주얼이 되도록 아무도 치우지 않아 결국 내가 했다. 그냥 지저분한 꼬락서니를 보기 싫어서 내가 해버렸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 뒤로는 그냥 한다. 말 그대로.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층 동료 직원이 왜 그걸 네가 하고 있냐고 웃음기 어린 핀잔을 준 적이 있다. 결국 치우는 사람만 호구되는 거 아니냐면서 말이다. 딱히 상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호구는 너무하지 않냐고 웃었다. 흠, 호구라.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착하게 살라는 말을 들으며 컸다. 나쁜 짓 하지 말고 거짓말하지 말고, 어디 가서 남 괴롭히지도 말고.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모두 똑같은 교육을 받으며 커왔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왔는데 호구 소리를 듣게 되다니. 


정글 같은 사회에서 착한 짓을 하면 손해 본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결과물일 것이다. 각박한 현실세계에서 이 ‘손해’라는 것은 급소를 노리는 비수 같은 존재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쪽이다.


나도 사람인지라 널브러져 있는 것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버티고 앉아있을 때도 있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치워야 하는데 가만히 있으려니 눈에 밟히고 신경이 쓰인다. 그래서 결국 몸을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인과응보 사필귀정. 모든 일은 연결되어 있고 결국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바른 길로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착한 일을 한 나는 손해를 보고, 그러지 않은 사람이 득을 보는 것 같아도 결국 모든 것은 제자리를 찾는다는 뜻이다. 


내가 나를 속이지 않고 떳떳하고 내 신념대로 산다면 마음 불편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내 마음이 편하다면 그깟 작은 손해는 내 인생에 있어 티끌만 한 흔적도 남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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