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100 글]52일, 쉰두 번째 썰
나는 가능하면 걱정을 머릿속에 남겨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뭐 하나에 꽂히면 밤이고 낮이고, 시간 상관없이 ‘그’ 생각에만 빠져있기 때문이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수면부족인 상태로 눈을 떠 하루를 망친 적이 몇 번 있기에 더 노력한다. 작은 걱정들은 보통 빠르게 몸을 움직이거나 좋아하는 예능을 보면 어느 정도 사라진다. 하지만 간혹 끈질긴 녀석들이 있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나를 괴롭힌다. 지나친 걱정이 좋지 않은 이유는 사람이 피폐해진다. 아직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는데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지, 난리도 아니다. 왜 나는 이런 걱정들을 떨쳐내지 못해 잠도 못 자고 사서 고생일까, 하고 자책도 든다. 생각하지 말아야지 애써보는 것도 고작 몇 분. 그 걱정은 다시 내게 돌아와 한껏 나를 괴롭힌다.
처음에는 그냥 자연히 잊힐 때까지 기다렸다. 좀 무식한 방법인데 시간이 약이라는 말만 믿고 그냥 기다렸다. 그러다 보면 정말 어느 정도 해소가 된다. 단점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장담을 못한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심할 땐 기약이 없다. 한 번은 3주까지 세다가 그냥 놔버린 적도 있다. 1년 중 한 달이 그냥 없어지는 것? 걱정과 함께라면 일도 아니다.
그러다 일기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조언을 받았다. 걱정거리에 대해 쭉 나열해 보라는 것이다.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전에 비슷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시작해 봤다. 뭐가 마음에 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이 된다는 식으로 그냥 무의식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그런데 오. 생각보다 괜찮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객관화가 된다는 것. 마음에 걸리는 것을 머리로만 생각했을 땐 정말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그것을 글로 작성해 눈으로 보니 에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구나, 내가 이래서 이런 감정이 들었구나가 명확해진다. 스스로도 냉정하게 판단이 되니까 마음 정리도 빨랐다.
무엇보다 내 속에서만 곪고 있던 감정을 뱉어내니 시원했다. 머리가 터질 것처럼 답답하고 대책이 안 섰는데 일기를 쓰고 나니 조금 후련해진다고 해야 할까. 그때부터 그냥 걱정거리가 있다면 손을 움직였다. 방식은 내 마음대로. 규칙 따위는 없다. 번호로 순서를 매겨 쭉쭉 쓸 때도 있고, 걱정이 되는 사건에 대해 주절주절 써 내려갈 때도 있었다. 중요한 것은 걱정과 내 감정에 대해 최대한 솔직하게 쓰는 것. 그거 하나는 꼭 지켰다.
심한 걱정 때문에 잠들지 못할 땐 종이나 아이패드를 끌고 온다. 손을 움직여 긁적이다 보면 이만한 수면제가 따로 없을 지경. 정신없이 휘갈기다 보면 간혹 욕으로 마무리가 될 때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나밖에 안보는 내 일기장인데 뭐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