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이양 Aug 01. 2023

엄마의 두통과 양배추즙 100포

[100일 100 글]54일, 쉰네 번째 썰 

일요일 아침, 엄마가 아팠다. 아침을 먹으려고 나왔는데 엄청나게 가라앉은 모습으로 식탁에 앉아계셨다. 속상한 일이 있었냐고 물으니 엄마는 머리 뒤쪽이 기분 나쁘게 아프다고 하셨다. 간혹 어깨 신경이 말썽을 부려 두통이 있으셨던 적이 있어 그건가 했더니 어깨는 멀쩡하다고 하셨다. 두통이 심해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끝마치신 엄마는 그대로 침대로 향하셨다. 


두통 때문에 저렇게 누워 계신 적이 거의 없었던 일이라 조금 당황했다. 그러다 최근 들어 굉장히 습하고 더웠던 것이 떠올랐다. 내가 더위에 약한 것만큼 엄마도 더울 때 맥을 못 추시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추어탕으로 이겨내셨기에 일요일 점심은 외식을 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식사를 하실 때도 잘 드셨고, 집에 도착하고 나서도 괜찮다 하셔서 상황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역시 더워서 문제였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밤 10시가 넘어서부터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다시 두통을 호소하신 것이다. 머리가 너무 불쾌하게 아프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미 하루 적정량의 두통약을 드셨기에 더 약을 권하기도 애매했고, 엄마도 그냥 버텨보시겠다고 했다. 두통이 너무 심해 엄마는 방에 들어가 웅크리고 누워계셨다. 


그때부터 뒷골이 오싹하게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최근 막내이모를 만났을 때 이모의 친구분께서 얼마 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얘기를 들어 더 그랬다. 그분도 심하게 두통을 앓으셨는데 그것을 그냥 견디시다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셨다고 했다(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셨다). 


입술만 깨물다 급하게 인터넷으로 뇌졸중과 뇌경색의 전조증상에 대해 알아봤다. 엄마한테 조심스럽게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일단 해당되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엄마의 두통은 여전했고, 뒤늦게 먹은 진통제는 소용없었다. 


두통 때문에 엄마는 쉽게 잠에 들지 못하셨다. 아빠도 내일 병원에 가보자고, 별거 아닐 테니 일단 자자고 하셨지만 이런 적이 없었기에 굉장히 신경 쓰여하셨다. 나도 잠이 오지 않아 새벽 2시가 넘어가도록 잠들지 못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자는 둥 마는 둥 그렇게 밤을 지새워야 했다. 


월요일 회사에 가서도 쉽게 집중이 되지 않아 곤란했다. 그동안 엄마가 병원을 찾으면 대게는 가족들이 아는 증상으로 인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두통은 아니었다. 이건 우리 가족들에게 몹시 낯선 것이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가만히 있으면 이상하게 불안해져서 괜히 화장실을 가는 척, 물을 뜨러 가는 척, 그렇게 몸을 움직였다. 중간에 엄마와 통화를 하니, 아까는 괜찮았는데 지금은 또 아프다고 하셨다. 순간 조퇴를 하고 갈까 했지만 지금 병원 앞이라고 하셔서 참았다. 40분 뒤. 엄마가 진료를 다 보고 나왔을 때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정말 시간이 안 가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병원에서는 역류성 식도염으로 인한 두통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식도염은 엄마의 오랜 고질병이었다. 그래서 약을 꽤 자주 드셨는데 그것 때문에 두통이 생길 수 있다고?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라 의아했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그렇다고 하시니 그럴 수도 있구나 했다. 중요한 것은 처방약을 먹고 엄마의 두통이 괜찮아지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사 선생님의 진단이 맞았다. 식도염 약을 먹고 난 뒤, 엄마의 두통은 사라졌다. 정말 신기하게 안 아프다고 하셨다. 물론 조금이라도 과식을 하거나 위를 무리하게 하면 다시 두통이 돌아왔다. 하지만 약을 먹으면 괜찮아지셨다. 위로 인한 문제가 맞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어찌나 안심이 되던지. 그래서 엄마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양배추즙 100포를 그 자리에서 결제해 버렸다. 


나는 세련된 단어와 깨끗한 문장으로 이 감정을 표현하고 싶다. 하지만 어째 그때만 생각하면 날 것 그대로의 말이 튀어나온다. 진짜, 정말, 너무 놀랐다. 이런 적이 처음이어서 더 그랬다. 원인을 찾아서 다행이었고 내가 걱정한 그것이 아니어서 더 다행이었다. 후우. 


이제는 다른 것이 걱정된다. 곧 집으로 배달될 양배추즙 100포를 보고 엄마가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할 텐데. 대책 없이 그 많은 양을 다 어떻게 할 거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하지. 그것을 고민할 차례다. 그래도 이 고민을 하는 것이 더 낫고, 더 기쁘다. 

매거진의 이전글 걱정이 심할 땐 일기 쓰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