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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Aug 04. 2023

평소보다 10분 일찍 일어났을 뿐인데

[100일 100 글]56일, 쉰여섯 번째 썰 

밤새 더위에 뒤척이다 평소 기상 시간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딱 10분. 잠깐 고민이 되었다. 좀 더 뒹굴 거리다 일어날까, 지금 일어날까. 10분 더 누워 있는 다고 피로가 사라지진 않지만, 아깝기도 하고 그냥 좀 더 누워있고 싶었다. 하지만 당장의 편안함을 누리기에는 육신이 더위에 너무 찌들어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아닌 듯했다. 결국 스스로의 재정비를 위해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적 여유를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으니 급할 것이 없었다. 아침 샤워를 꼼꼼하게 한 뒤, 거울 앞에 앉았다. 욕실에서 시간을 꽤 썼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제법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여유롭게 얼굴을 찹찹 두들기며 스킨케어를 하고, 머리카락을 한 땀 한 땀 공을 들여 말렸다. 항상 시간에 쫓겨 급하게 나가느라 뒤통수가 엉망이었는데, 오늘은 바스락 소리가 날 때까지 말렸다. 어제 미리 정해둔 출근복으로 환복까지 마쳤는데. 아니, 그래도 시간이 남아있었다. 


급할 것이 없으니 간발의 차로 엘리베이터를 놓쳐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 출근길 음악을 선곡하다 보면 어느새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있는데 기분 상할 일이 뭐가 있을까. 날이 더우니 조금 천천히 걸었다. 샤워까지 마쳤는데 땀이 나면 조금 곤란했다. 뭐, 매일 아침 곤란해 하지만 이날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이렇게 여유를 부려도 시간이 괜찮았다. 


아파트 단지를 느리게 걷다 보니 유치원 차량에 앉아있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시는 부모님들의 모습이 보였다. 부부가 나란히 서서 등원 차량에 하트를 날리고 계셨다. 조금 요란해 보이기는 했지만 조금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아니, 설사 봤어도 그때의 난 경주용 말이었으므로 기억 못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에 내려 지상으로 올라가려는데 역사에 있는 편의점이 보였다. 나는 회사에 들어서면 퇴근하는 순간까지 밖에 나오지 않는다. 밖이 불바다이므로 특별한 일이 없다면 그냥 자리를 지킨다. 그러므로 출근길 이 시간이 편의점을 들릴 수 있는 최후의 기회였다. 평소 같으면 시간이 없으니 그냥 지나쳤을 장소지만 이날은 달랐다. 지체 없이 입장해 그동안 계속 먹고 싶었던 항아리 바나나 우유를 여러 개 구매했다. 


사무실로 걸어가는 동안 항아리 바나나 우유 1을 없앴다. 추억의 바나나 맛이 달달하게 입안에 퍼지니 기분이 두둥실 떠오르는 기분이었다. 어렸을 땐 굉장히 커 보였던 사이즈가 지금은 왜 이렇게 작게 느껴지는지. 그 작은 것을 잘게 나눠 마시는 사이 사무실에 도착했다. 동료들이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나를 보며 놀라워했다. 괜히 뿌듯해져 거만하게 머리카락을 휙 넘겼다. 


단지 평소보다 10분 일찍 일어나 움직였을 뿐인데. 출근하는 1시간 동안 이렇게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조금 부지런을 떨었을 뿐인데, 급할 것이 없으니 평소 잘 느끼던 마음의 울컥거림이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사람이 좀 차분해진다고 해야 하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침대 위를 사수하다 총알처럼 튀어나와 정신없이 출근하던 때에는 느끼지 못한 마음과 감정이었다. 고작 10분 일찍 일어났을 뿐인데 말이다. 


그날 하루가 완벽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았다. 제법 평화롭게 다시 침대에 누웠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그것으로 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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