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100 글]58일, 쉰여덟 번째 썰
“넌 애가 참 늦되.”
엄마가 나를 볼 때마다 하는 말이다. 그건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이기에 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남들이 정해놓은 나이에 대한 강박이 딱히 없는 편이다. 몇 살에는 뭘 해야 하고, 몇 살까지는 뭘 해야 되고. 이런 것이 없다. 그러다 보니 뭔가를 시작했을 때의 나이가 남들보다 늦은 경우가 왕왕 있는 편이다.
첫 회사에 취직을 했을 때 내 나이가 29살이었다. 남자 동기들과의 나이차이는 거의 없었는데, 여자 동기들 쪽에서는 대부분이 나를 언니라고 불렀다. 조금 오래 걸린 수능 준비와 휴학 후 어학연수를 다녀오며 그만큼 취업 준비 기간이 뒤로 더 밀린 덕이다. 내 나름대로 그 시간을 알차게 보냈기에 남들보다 늦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 입사를 하자마자 제법 많은 분들이 나의 늦은 출발에 대해 한 마디씩 툭툭 던지셨다. 잘못됐다는 뉘앙스는 아니었기에 딱히 마음 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좋은 말도 계속 듣다 보면 물리듯이, XX 씨는 남들보다 좀 늦었잖아?라는 말이 점점 내가 실수했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물론 나에게 첨언을 해주신 분들은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나 혼자 지레 짐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수능 준비를 하며, 휴학 기간 동안 제법 착실하게 내 나름의 경험을 쌓았는데 그 시간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 속상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홀로 아주 진한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진다. 정말 내가 늦었나? 내가 이렇게까지 그들이 정해놓은 바운더리를 신경 써야 하나 고민한다.
유튜버 밀라논나 님께서 말씀하셨다.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을 사람들이 하는 말에는 신경 쓰지 말라고. 고민의 고민 끝에 도출되는 내 결론도 마찬가지이다. 내 출발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늦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조금 늦었을지언정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에는 확신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남들의 말에 속상해하고 나를 의심한 시간이 아까워졌다. 내 것에 집중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남들 말에 신경 쓸 겨를이 어디 있냐는 말이다.
내가 가는 길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다른 이들의 첨언은 그저 바람결에 지나가는 나뭇잎 같은 존재다. 굳이 내가 조급해지고 바꿀 이유는 없다. 그러니 나는 내가 지금껏 해온 대로, 느리지만 착실하게 내 갈 길을 가려고 한다. 거북이처럼 늦어도 결국 결승선에 도착하게 될 것이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