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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Aug 07. 2023

하루 세 번 샤워 뒤 수박주스 타임

[100일 100 글]59일, 쉰아홉 번째 썰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 땀이 흘렀다. 이 공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고 있는 선풍기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더위를 식히기에는 부족했다. 에어컨을 켤 수도 없었다. 자주 쐬었더니 머리가 아파 작동을 멈춘 것이 불과 몇 분 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조금만 더 버텨보자 싶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괜찮아질 거다, 그렇게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한도 없는 블랙카드처럼 불쾌지수가 축적되고 있었다. 살에 닿는 옷과 이불의 감촉이 몹시도 짜증스러웠다. 


하지만 결국 몇 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배달 어플을 켜 근처 카페를 검색해 수박주스와 구운 과자를 주문했다. 잠시 뒤 확인한 배달 예상 시간은 25분. 시간은 충분했다. 빠르게 욕실로 간 나는 오늘로 세 번째 거행하는 찬물 샤워에 돌입했다. 차갑게 떨어지는 물아래에서 피부에 얇게 깔린 땀과 열기를 열심히 지워냈다. 폭풍 같은 샤워를 마친 뒤 세게 틀어놓은 선풍기 앞에서 머리를 말리는 순간 울리는 벨소리. 아, 이렇게 완벽한 타이밍이라니. 


발을 동동 거리며 받은 수박주스를 고이 모셔와 다시 선풍기 앞에 주저앉았다. 집에 있는 유리 빨대를 물고 한 모금 쭉 들이켜는 순간 차가운 계곡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아, 이거지. 드디어 모든 것이 완벽해졌다. 


평소 날이 더울 땐 차가운 맥주를 즐기는 편이다. 깨끗하게 씻은 뒤 마시는 차갑고 따가운 맛은 정말 모든 직장인의 꿈 아니던가. 하지만 이렇게까지 더울 땐 오히려 독이다. 술을 마시면 올라오는 열기 때문에 더 정신이 없어진다. 특히 더위를 많이 타는 나는 여름에 술을 아주 조심해야 한다. 얼음물도 조심해야 하는 액체류 중 하나이다. 최근 차가운 것을 너무 많이 먹어 탈이 난 이후 특히 더 조심한다. 여름이면 입이 써서 뭘 먹어도 다 쓰게 느껴진다. 그래서 슬프게도 아아는 탈락이다. 


그 이후 나의 원픽은 수박주스. 적당히 달달하면서 제철과일의 청량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만족스럽다. 샤워 후 차가워진 피부에 닿는 시원한 바람까지 더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해진다. 알맞게 갈린 얼음조각을 씹을 땐 에어컨보다 선풍기가 오히려 궁합이 잘 맞는 기분이다. 마치 배부른 사자처럼 누워 있노라면, 많은 것에 관대해진다. 내 머리를 툭툭 치던 짜증과 불쾌지수는 온대 간데 없이 사라진다. 비록 내일이 월요일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뽀송해진 몸과 마음으로, 나는 이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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