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100 글]61일, 예순한 번째 썰
입사 초반, 나는 몹시 겁이 많은 직원이었다. 내가 뭐 하나 실수하면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에게 떨어지는 모든 업무를 부들부들 떨면서 진행했다. 신입사원에게 뭐 얼마나 중요한 업무를 넘겼겠냐마는 그 당시 나는 진지했다. 나를 믿지 못해 이미 확인 완료한 자료도 두세 번 다시 읽고 확인했다. 메일을 보내고도 혹시 몰라 또다시 확인했다.
회사 업무를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 중 하나는 모든 업무가 당일에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메일을 확인하고 답신하면 끝.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내가 맡은 업무 중 대부분은 해외 본사와 소통을 해야 해서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까지도 지켜봐야 했다. 간단하게 끝나면 땡큐지만 간혹 골머리를 썩게 하는 업무가 있을 땐 정말 곤혹스러웠다. 계속 그 업무에 대해 고민하고, 해결책을 강구하는 것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해외 본사는 빠르게 답을 주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한국인을 기다리게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안 그래도 업무에 익숙하지 않은데 골치 꽤나 썩는 일이 생겼을 땐 정말 신경이 바짝 곤두섰다. 내가 맡은 부분에서 에러가 나면 안 되기 때문에 집중하느라 두통이 오고 승모근이 뻐근하게 올라오기 일쑤였다. 빠르게 업무가 진행이 되지 않으면 위에서 한 소리 들을까 봐 걱정하는 것도 상당히 스트레스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러지 않아도 됐는데 걱정이 지나치게 많았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연차가 쌓여갔고, 올라가는 경험치만큼 한 가지는 확실하게 배웠다. 모든 문제는 결국 해결된다는 점이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잘 만큼 스트레스받던 문제도 시간이 지나자 어떤 식으로는 해결이 됐다. 뒤죽박죽 엉망으로 엉킨 매듭을 하나하나 푸는 것도 방법이지만 가위로 잘라버리는 것도 방법이니까. 어떤 결과를 보던 결국 끝을 봤다.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촉이 오면 전에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냥 한숨과 함께 욕 한번 뱉고 가만히 때를 기다린다. 짜증이 나지만 전보다 차분해진 마음으로 천천히 업무를 해결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렇게 중얼거리다 보면 어느 순간 상황 종료가 되어 있다.
내 개인적인 일을 받아들일 때도 마찬가지. 인간관계에서나 내 목표에 대한 고민이 생겼을 때, 내적으로 미쳐 날뛰던 예전과는 달리 일단 기다린다. 성질이 나도 그냥 기다린다. 시간이 걸려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면 정신이 명정해지고, 그런 정신으로 전에는 안 보였던 해결책을 찾게 되고, 결국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업무적인 일이던, 개인적인 일이던 문제가 생겼을 땐 스스로의 마음에 부드러운 쿠션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비록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지라도, 근본적으로 나를 괴롭히던 것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 뭐든 시간을 주자. 뾰족해진 마음에 다치지 않게 조심하다 보면 어느 순간 문제는 해결돼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