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100 글]62일, 예순두 번째 썰
회사에서 나를 나타내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도라에몽이다. 말 그대로 없는 것 없이 서랍만 열면 다 나온다는 뜻에서 이런 별명이 붙었다. 간단하게 사무용품 외 물건을 소개해볼까. 소화제 알약 & 드링크 세트, 감기약, 진통제, 밴드와 연고 세트, 면봉, 알코올 스왑, 반짇고리, 마사지용 괄사, 입냄새 방지용 민트와 껌, 졸림 방지용 사탕, 비상용 우산 2개. 일단 생각나는 것은 이 정도이다. 텀블러, 가습기, 충전기 등등은 너무나도 기본 아이템이니 포함시키지 않았다.
내가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도 사정은 비슷하다. 앞서 말했듯 나는 백팩 애용자이다. 패션피플들이 들고 다니는 손바닥만 한 가방이 아니라 13인치 랩톱과 태블릿 PC가 너끈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큰 가방이다. 다이어리와 책, 그 외 여가시간을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태블릿 PC는 껌딱지처럼 내게 붙어있다. 지갑도 마찬가지. 화장품이 들어있는 파우치에는 역시 진통제와 소화제 그리고 밴드가 들어있다. 요즘처럼 해가 뜨거운 날에는 선글라스와 양산은 필수템이다. 더위에 약한 나는 이것들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내 방 사정은 상상에 맡기겠다.
조금은 쓸데없어 보이는 물건들의 보유 이유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혹시 몰라서’이다. 점심 먹고 체할 까봐 혹시 몰라서, 어깨가 아플까 봐 혹시 몰라서, 미팅 중에 실례될까 봐 혹시 몰라서, 식곤증 때문에 사무실에서 나도 모르게 잠들 까봐 혹시 몰라서. 전부 혹시 모를 응급상황에 대비해 구비해 둔 준비물들이다.
사실 이것들을 챙겨 다니는 것이 나에게는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들고 다니던 물건들이었기에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뭐가 필요하다고 할 때마다 척척 꺼내 드니 보는 이들마다 신기해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 없는데 너무 무겁게 가방을 들고 다니니 말이다. 그러다 나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께서 웃으시며 툭 던지셨다.
“XX 씨 걱정이 많나 보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들고 다니나 봐.”
아, 그런가요. 대충 웃으며 답했지만, 어쩐지 부정할 수 없는 한 마디였다. 그렇게 연결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생각해 보면 우산을 제외하고 제대로 사용한 물건들이 거의 없었다. 설사 사용하더라도 내가 쓰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쓰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러니 도라에몽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 싶다.
나는 가벼운 패닉에 빠졌다. 유비무환을 생각했는데 그 반대의 경우일 줄이야. 그러니까 내 사무실과 내 방의 서랍장에 처박아둔 것들이 다 내 걱정거리란 소리였다. 진짜 많은데 이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리고 정리되지 않은 지저분한 내 방 한가운데서 나는 결심했다. 아무래도 처리할 방법을 찾아야겠다. 예쁘게 차곡차곡 정리해서 버리든, 확 불을 싸지르든 뭐든 해야겠다. 내가 소유한 물건, 내 머릿속 둘 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