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100 글]66일, 예순여섯 번째 썰
중, 고등학교 때부터 난 뭔가 우울하거나 기분전환을 하고 싶을 때 돈을 썼다. 말이 돈을 썼다는 것이지, 사는 물품들은 소소하기 그지없었다. 내 단골 아이템은 문구류 혹은 조금 화려한 머리핀. 한번 살 때마다 결코 2 천 원을 넘지 않았다. 그래도 적은 금액에 비해 효과는 좋았다. 그렇게 충동구매를 하고 나면 며칠 동안은 기분이 좋아지니 말이다.
기분전환을 위해 처음부터 돈을 썼던 것은 아니었다. 동네를 3 시간 동안 걸어보기도 했고, 평소 좋아하던 예능이나 미드를 밤새 돌려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근육통으로 힘들거나, 잠을 제대로 못 자는 등 몸이 너무 힘들어졌다. 지금이라면 잡생각 안 난다고 좋아했을 테지만 당시에는 아침 일찍 학교에 가야 했기에 불편하기만 했다. 영상물을 볼 때는 제대로 집중도 되지 않아서 돌려보는 경우도 많았다. 결국 시간과 기분전환, 두 가지 모두를 놓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소하게 구매하는 것으로 기분전환을 하기 시작했다. 가성비가 좋다 보니 빈번하게 문구점을 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쁘고 화려한 머리핀을 사면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당시에 샀던 핀 중에는 아직도 내 서랍장에 들어있는 것도 있다.
시간은 흘렀고, 나는 나이가 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10대 주제에 물욕이 상당했다. 아무리 소소하다 하더라도 용돈 받는 학생이 기분전환 한다고 돈을 펑펑 써대다니. 이런 불효가 어디 있냐는 말이다. 사실 그때 스트레스 푸는 법을 제대로 알았더라면 조금 다른 생활을 하며 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돈이 없으면 모든 것이 말짱 꽝이니 말이다. 실제로 대학생활을 할 때는 그런 곳에 돈 쓰는 것이 아까워서 구매를 멈췄고, 그때부터 스트레스가 조금씩 축적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그래도 지금은 기분전환을 하는 나름의 방법을 찾은 것 같다. 확실히 몸을 격렬하게 움직이면 잡생각이 사라진다. 그래서 예전만큼 헬스장을 가는 것이 지겹다거나 싫지 않다. 과거 헬스장 기부천사였던 나를 알고 있는 (나를 포함한) 내 가족들이 좀, 많이 놀란 부분이다. 운전을 하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됐다. 나도 이런 것이 가능하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 자신감도 확 늘어나고 가슴이 뻥 뚫린 느낌을 준다. 사실 이런 부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내 활동범위가 넓어진다는 것은 정신적 만족도를 상당히 높여주었다. 차를 사면 삶의 질이 높아진다더니, 정말 그랬다.
이제는 속이 갑갑하다 싶으면 제일 먼저 집을 나선다. 헬스장을 가던지, 차를 타고 나가던지, 내 나름의 방법으로 다 털어 내버린다. 이것도 돈이 들었지만 나에게 필요 없는 물건을 사는 것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조금 빨리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그게 조금 아쉽다. 하지만 뭐든 절대적으로 늦은 것은 없고 방법을 찾았다면 그걸로 된 것이다. 정신승리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속성으로 기분전환을 해야 할 때는 돈 쓰는 것만큼 효과 빠른 것도 없다. 나도 알고 싶지 않았다. 슬프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