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100 글]67일, 예순일곱 번째 썰
저번 주 회사 동료 중 한 명이 제주도로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친구들과 함께 다녀왔는데 꽤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는지 얼굴에 즐거움이 가득했다. 점심시간에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결이 비슷한 친구들과 함께 다녀와서 아주 편하게 여행했다고 했다. 그러다 문득 오래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대학생 시절, 동기 3명이 일본으로 함께 여행을 갔다. 제법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었기에 그냥 갔구나 했는데, 막상 개학을 하고 만나보니 분위기가 몹시, 아주 묘했다. 이상하게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자세한 내막은 세 친구 중 가운데 껴있던 친구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원활한 전개를 위해 친구들을 각각 A, B, C로 칭하도록 하겠다.
친구 A의 여행 스타일은 현지 살기. 말 그대로 한국에 사는 것처럼 여유 있는 여행을 즐기는 타입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천천히 아침을 먹고 동네 산책 나가는 것처럼 여행을 즐긴다고 했다. 반면 친구 B은 여행을 할 때 베짱이처럼 부지런해지는 친구였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첫 스케줄을 아침 7시에 시작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안타까움의 탄식이 나와 버렸다. 내가 가장 안타깝게 생각했던 친구는 C. 즐거워야 할 해외여행에서 양쪽 눈치를 보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다. 친한 친구들끼리 가서 재미있게 놀다 와도 부족할 판에 중간에 껴서 세상 고통스러운 3박 4일을 보냈으니 말이다. 친구 B가 먼저 나가서 본인의 여행을 즐기다 나중에 친구 A가 합류를 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 상황이 애매해진 느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많이 안타깝다.
나의 경우, 내가 계획을 짠 것이 아니라면 일행의 계획에 절대적으로 토를 달지 않는다. 불만이 없을 수는 없지만 크게 불편한 상황이 아니라면 일단 입을 닫는다. 그리고 여행이 끝난 시점에는 덕분에 좋은 여행을 했다고 고마움을 표현한다. 남의 고생을 당연하게 느끼는 것도 너무 염치없는 짓이니까. 무엇보다 마무리까지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니 말이다.
고작 여행일 뿐인데 인간관계를 비롯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해야 하나 싶다. 체력을 아껴도 모자랄 판에, 머리까지 피곤하게 말이다. 그만큼 누군가와 여행을 간다는 것이 꽤 힘든 일이라는 반증일 터다. 그러면서 또 다른 의문이 든다.
과연 이 세상에 완벽한 여행 동지는 있는 것일까? 쿵하면 짝하고 맞는 그런 친구 말이다. 여행 계획을 짜는 그 순간부터 가고 싶은 장소가 모두 같고, 입맛도 비슷해 레스토랑 선정에 어려움이 없는 그런 친구. 체력도 비슷해서 휴식 타이밍도 딱딱 맞고, 주량도 비슷해 숙소에 들어가 맥주 한 캔 열 수 있는 그런 친구 말이다.
슬프게도, 나는 아직 그런 친구를 만나지 못했다. 내가 완전히 끌고 가던지, 완벽하게 양보하고 배려하던지 둘 중 하나다. 일단 한쪽이 포기해야 편해지는 것이 여행이니까 말이다. 여름휴가를 앞둔 시점에 몹시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