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이양 Aug 16. 2023

인간의 자비심은 정제 탄수화물에서 나온다

[100일 100 글]68일, 예순여덟 번째 썰

나는 회사 입사 전 약 20kg 가까이 체중을 감량했다. 원래부터 좀 통통한 편이었는데 캐나다 어학연수 1년으로 내 인생 몸무게를 찍게 된다. 정확한 숫자는 밝히기 부끄럽고, 그냥 과체중이라고만 남기겠다. 엄마는 공항 입국장에서 1년 만에 만난 딸을 떠올릴 때마다 혀를 내두르신다.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는데 아직도 말이다.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굴러 나오는 딸의 모습은 꽤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리 살이 쪘어도 보통 성인이 된 조카에게 살 빼라는 말은 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그 어려운 일을 우리 친척 어른들이 해내셨다. 어우, XX는 살 좀 빼야겠다. 만날 때마다 듣는 이 소리에 처음에는 어이없고 짜증이 났는데 계속 듣다 보니 어라? 싶어졌다. 사실 그 때까지만 해도 난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살이 쪘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래봐야 2-3kg 정도라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학연수 전후로 10kg 정도가 쪘다. 그렇게 다이어트의 대장정이 시작되었다.


다이어트를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식이조절이다. 식이조절 없이 운동을 하면 건강한 돼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운동 안 하고 먹는 것만 조절해도 건강과 상관없이 일단 살은 빠진다. 건강하게 빼기 위해 운동을 곁들이는 것이지 식이조절은 절대적으로 우선 시 해야 한다.


내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했던 나의 식습관은 바로 밀가루를 좋아한다는 것. 빵 보다도 면을 너무 좋아한다. 특히 잔치국수, 우동류의 음식에 환장한다. 캐나다에 있을 당시 살이 많이 찐 이유 중 하나도 볶음우동 종류를 거의 매일 섭취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양도 한국보다 훨씬 많으니 살이 안 찔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면 음식을 끊었다. 많이 빼야 했고 급한 만큼 좀 극단적으로. 밀가루를 그냥 아예 안 먹어 버렸다.


그동안 얼마나 면 요리에 중독되어 있었는지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고작 며칠 안 먹었을 뿐인데 눈에 보이는 것이 달랐다. 부기도 빠지고 배도 들어갔다. 속도 편하고 피부도 꽤 좋아졌었다. 다이어트할 때 밀가루를 조심하라고 하더니, 괜히 하는 말이 아니구나 싶었다. 보이는 숫자가 달라지니 성취감도 느껴지고 좋았다. 그래서 엄마는 말리셨지만 기존 식사의 3분의 2를 먹지 않았다. 쌀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그런데 뭐랄까. 사람이 예민해졌다. 극단적인 식단만큼이나 극단적으로 사람이 바뀌었다. 나를 지적하는 작은 소리도 듣기 싫어했다. 말은 안 해도 기분 나쁜 티, 싫은 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분위기로 말을 한다고 해야 할까. 또 비슷한 시기에 왠지 모르게 피곤하고 현기증을 자주 느꼈다. 나는 분명 직진 방향으로 걷고 있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대각선 방향으로 걷는 식으로 말이다. 솔직히 머리가 어지러웠을 땐 좀 무섭기도 했다. 다이어트 전에는 이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문제를 눈치챈 사람은 바로 엄마. 안 그래도 식단이 마음에 안 드는데 사람까지 변하는 것이 보이니 바로 커트시키셨다. 나를 앉혀놓고 극단적인 식단이 왜 건강에 안 좋은지 논리적인 팩트로 나를 두들기셨다. 그쯤 슬슬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엄마 말은 잘 듣는 딸인지라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부터 한식 위주로, 적당하게 알맞은 양으로 식사했다. 운동도 열심히 했고 무엇보다, 면 요리가 먹고 싶을 땐 먹었다. 굳이 참지 않았다. 국수가 먹고 싶으면 곤약면 말고 시중에 판매하는 일반 국수를 먹었다. 너무 타이트하게 금지음식을 안 먹는 것도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니 시간을 딱 정해놓고 먹었다. 그렇게 하니 확실히 살은 더디게 빠졌다. 하지만 동시에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치팅데이가 있는 거구나 했다.


특히 몇 주 만에 처음 우동을 먹던 날. 그제야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흐릿했던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랄까. 내가 봐도 내 마음이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은 (남)동생의 시비를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달랐다. 극단적인 식단 중일 땐 소리 지르면서 싸우고 난리가 났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냥 그렇구나, 하고 가볍게 넘겼다. (남)동생의 시비를 그냥 넘어가다니. 내가 이렇게 자비로운 인간이었나. 나도, (남)동생도, 엄마 아빠도. 모두 놀랐다. 밀가루의 힘이 이렇게 위대하다니.


다이어트에 왕도는 없다. 운동하고, 한식 위주의 식사를 평소의 양보다 줄어서 먹으면 살은 빠진다. 조금 더딜 수는 있지만 인내한 만큼 보상은 확실하다. 무엇보다 먹고 싶은 것이 있다면 참지 말고 먹자. 길거리 파이터가 되어 경찰서에 가는 것보다 푸드 파이터가 되는 것이 내 인생을 위해서 훨씬 괜찮은 방법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완벽한 여행 동지는 존재하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