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100 글]75일, 일흔다섯 번째 썰
마시멜로우 테스트라는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눈앞의 마시멜로우를 일정 시간 동안 먹지 않고 참으면 1개의 마시멜로우를 더 준다는, 일종의 인내심 및 자제력 테스트이다. 보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실험인데, (성인인) 나는 아주 어렵지 않게 실패할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하다. 나는 인내심이 아주 부족하다.
라면을 먹을 때 물 끓는 시간이 아까워서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받아서 끓인다. 확실히 시간이 단축된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도 그 시간이 지루해서 휴대폰을 꺼낸다. 최근에는 조금 줄이긴 했지만 간혹 아무 생각 없이 서 있을 땐 바로 휴대폰 타임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버스나 지하철이 오는 방향 쪽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식당에서도 마찬가지. 주문과 동시에 내 시선은 주방 쪽으로 향한 뒤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식이다 보니 20분 이상 기다려야 하는 식당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 자연스럽게 재낀다.
이 인내심 없는 성격은 업무에서도 여과 없이 발휘된다. 어떤 업무가 오건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빠르게 이것을 해치울 수 있느냐이다. 그래서 나는 회사 내에서도 속도가 빠른 것으로 나름 유명하다. 지금이야 업무가 익숙해졌으니 검토에도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지만 이런 성격 때문에 입사 초반에는 많이 힘들었다. 빨리 해야 하는데 빨리 되지 않으니 너무 답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멍청했다. 정확도를 높여야 할 신입 주제에 감히 ‘빨리’를 논하다니 말이다. 결국 몇 번의 위기를 겪고 나서야 정확도에 집중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빨리’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맡은 업무이다. 현재 나는 유통회사의 무역부에서 근무 중이다. 그중에서도 영업에 관련된 부분을 주로 맡고 있는데, 해외 본사 사람들과 협의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 위의 업무를 하고 계신 분들은 아실 것이다. 해외 사람들, 특히 유럽 사람들은 여유가 넘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냥 너무 느긋하다.
나는 본사로부터 받아야 할 답변이 급해 죽겠는데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해놓고는 감감무소식이다. 뭐 하나 간단하게 물어봤을 뿐인데 업무가 완료되는 것까지 한 달 넘게 걸릴 때도 있다. 언젠가 한 번은 답이 너무 안 와서 전화를 했더니 담당자가 휴가란다. 그때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업무로 엮인 사이다 보니 회사 이미지도 생각을 해야 해서 대놓고 닦달을 할 수도 없다.
가능하면 평화롭게 답변을 받으려고 하지만 결국 내가 참아야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라면 물 끓는 시간도 아까워서 뜨거운 물을 끓이는 내가 말이다. 처음에는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지만 그래봐야 내 손해라는 것을 시간이 알려주었다. 그래서 메일을 보내놓고 답변이 오지 않는다면 영업일로 5일에 한 번씩 리마인드 메일을 보낸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정말 5일이 지나도 답변이 안 올 때도 많다.
내 개인적인 일이었다면 시간 단위로 쪼개서 답을 달라고 압박 메일을 보냈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회사와 연관되어 있는 일이기에 최대한 매너 있는 척은 해야 한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네가 하도 답을 안 줘서 그러는데) 내 질문에 대한 너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묻는 것이다.
간혹 답을 준다고 해놓고 답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그렇다면 상대는 5일에 한 번씩 내 안부 메일을 받게 된다. 끈질기게, 답을 받을 때까지 적당한 예의를 탑재한 채 상대를 쪼는 것이다. 한국인을 기다리게 하다니. 그들은 좋지 못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렇게 월급쟁이는 오늘도 답이 없는 그대를 울부짖으며 인내심을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