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이양 Aug 24. 2023

순살 아파트 같은 회사에 다닙니다

[100일 100 글]76일, 일흔여섯 번째 썰 

[직장인이 가장 퇴사하고 싶은 순간은 회사가 한심해 보일 때다]


어디선가 읽었던 짧은 문장이다. 누군가 괴롭히거나, 업무가 힘들어서 퇴사 생각이 날 때도 많다. 하지만 가장 격렬하게 퇴사하고픈 마음이 드는 순간은 바로 회사 돌아가는 꼴이 말 같지도 않을 때라는 부연설명도 있었다. 정말, 어디 사시는 누구이신지는 모르겠지만 이보다 더 격하게 동의할 수 있을까 싶다. 내 경험상 저 문장은 1000% 맞는 말이다. 


사람 때문에 힘들었을 땐 정말 이러다 병 걸리겠구나 싶을 때쯤 부서이동이 있었다. 업무가 힘든 경우도 많지만 어쨌거나 결국 해결은 되기에 스트레스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회사 상황이 진상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땐 정말이지 답이 없다. 아무리 다수가 틀렸다고 떠들어도 피라미드 정점에 있으신 분들이 귀를 닫아버리면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이 네가 뭔데 회사가 한심하네, 마네 하냐 하실 것이다. 


내 기준점 중 가장 큰 파이를 차지하는 것은 업무에 대한 기준점이 없을 때다. 같은 업무에 대한 지시사항이 마치 하루하루가 다른 신생아처럼 매일 달라진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한 고객이 집안의 도배를 다시 하기 위해 인테리어 업체와 계약했다. 고객의 의뢰를 위해 인테리어 업체는 하청 업체에 벽지를 발주한다. 물론 발주 전에 벽지에 대한 확답을 고객에게 확실하게 받아둔 상황이다. 말을 언제 바꿀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몇 번이고 확답을 받아놨는데 막상 고른 벽지가 마음에 들지 않은 고객이 인테리어 업체에 벽지 교체를 요청한다. 하지만 이미 발주가 들어갔기에 벽지 교체는 어려운 상황. 그 이야기를 들은 고객이 그렇다면 도배 계약에 대한 금액을 지불할 수 없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이다. 


예시를 회사에 접목시켜 보면 이렇다. 지시한 업무에 대해 본인이 얘기한 대로 진행하고자 거래처와 협의를 다 끝냈다. 물론 지시한 분에게 몇 번이고 확인한 다음에 말이다. 그런데 다음날 회의 시간에 해당 건은 다른 방향으로 진행하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거래처에 이미 다 통보해 놨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는 것이다. 어제 이러시지 않았냐고 되묻는 순간 불호령이 떨어진다. 뭐 어쩌겠나. 까라면 까야지. 결국 양쪽에서 의견을 조율해야 하는 나만 죽어나가는 것이다. 그렇다. 직원들에게 이보다 더 개진상인 것이 어디 있느냔 말이다. 


내부 구조를 탄탄하게 하는 철근 같은 기준점이 없으니 순살 아파트처럼 안이 텅텅 비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균열이 일어난다. 직원들의 눈에는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이 보이는데, 정작 우리보다 더 빠르게 눈치채야 할 분들의 머리는 꽃밭 그 자체인 것이다. 계속해서 문제점을 말해도 배구공 넘기듯 툭 쳐버린다. 


더 큰 절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당장 이 회사를 그만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만둘 타이밍을 놓쳐버리니 그다음 기회가 쉽사리 오지 않았다. 기회가 왔을 때 잡으라던 성공한 분들의 말을 이렇게 깨닫게 되다니. 이래서 내가 잠을 늦게 자는 버릇이 들은 모양이다. 눈 뜨면 회사를 가야 하니 말이다. 아, 쓰다 보니 속이 쓰리다. 슬프게도, 아직 목요일이다. 


젠장. 정말 젠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K-인내심을 보여주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