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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이양 Jun 10. 2023

침대 밖은 정말 위험할까?

[100일 100 글]2 일, 두 번째 썰 

오늘 나는 엄마와 함께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다녀왔다. 서울에서 243km 정도 되는 곳인데 차로 이동 시 언제나 4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린다. 평소에는 부모님이 운전하시는 차에 실려 다니곤 했는데 오늘은 내가 직접 운전해서 다녀왔다. 내가 운전에서 외할머니 댁에 다녀온 것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문득 감개무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n 년 동안 살아오며 운전면허증은 신분증 그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았는데 내가 운전에서 이 길을 다녀오다니. 이렇게 먼 길을 처음 운전하는 것도 아니면서 몹시 새삼스러운 생각이었다. 운전을 시작한 지 다섯 달 차. 많이 컸구나, 싶었다. 


장롱면허 1n 년 차인 내가 운전을 하겠다고 했을 때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특히 부모님이 아주 환영해 주셨다.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소위 집순이다. 이번 주에 약속 1개를 이행했다면 다음 주는 무조건 쉬어준다. 누군가 일요일에 밖에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고 이럴 수가 있나, 하고 와하하 웃으면 나는 내색하지 않고 조용히 놀란다. 난 토일 이틀 동안 침대에서 움직이지 않았는데, 저게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다니. 


어쩌다 가끔 주말에 외출을 한다고 해도 새로운 곳을 가지 않는다. 버스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지하상가를 마실 나가는 것이 전부다. 특별히 뭔가 사려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저도 가끔 외출해요를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쇼맨십이랄까. 내 좁은 행동반경을 나의 부모님은 무척 답답해하셨다. 세상에 좋은 곳이 얼마나 많은데 왜 침대 속에만 들어가 있냐고. 


그러다 업무적인 이유로 운전을 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생겨버렸다. 내근직이지만 가끔 외근을 나가야 할 때가 있는데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니 영업부 직원의 차에 짐 1이 되어 실려 다니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민폐라니. 상상만 해도 날개뼈부터 뒷목까지의 라인이 쭉 당겨오는 기분이었다. 


대중교통이 워낙 잘 되어 있는 서울에 살다 보니 면허가 있어도 굳이 운전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파워 집순이에게 여행이란 서울 근교에 사시는 할머니 댁이나, 고 근처 식당을 가는 것이 전부였다. 애초에 어딜 돌아다닐 생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뇌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작년 여름휴가를 5일이나 썼었는데 어디 안 가고 집에만 있었으니 말 다했지(심지어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집 밖을 나가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짐덩어리가 되는 것이 더 싫었던 나는 결국 운전연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기회가 생겨 내 이름 아래 등록된 차도 생겼다. 그리고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세상이 달라졌다. 차가 생긴 이래로 5달째, 매 주말마다 서울 근교로 나들이를 떠난다. 운전연수라는 명목 하에 엄마와 함께 맛집을 다니고 커피를 마시러 간다. 파도 소리를 들으러 바다로 떠났고 맑은 공기가 생각나 산으로 떠났다. 사람이 밝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했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낯선 상황에 홀로 떨어지는 것이 무서웠다. 내 좁은 세상 안의 안온함에 폭 들어가 있는 것이 행복했었다. 넓은 세상도 좋지만 그것은 나와 관련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난 ‘이곳’이 더 좋으니까. 편안하니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고 익숙하니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유독 심한 편이구나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 침대 머리맡에는 커다란 전국지도가 붙어있다.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가본 곳에 스티커를 붙이며 다음은 어디를 가야 하나 고민한다. 맨날 영혼 없이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들여다보던 내가 각 잡고 컴퓨터 앞에 앉아 여행지를 찾아본다. 물론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유튜브에 떠돌아다니는 사고 블랙박스 영상은 공포였고, 다른 운전자에게 시비가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이건 솔직히 지금도 무섭다). 


하지만 그 힘든 과정을 넘기니 전혀 다른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좁은 세상이 넓어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질 좋은 굳은살은 꼭 필요한 것이구나. 


변화는 여전히 무섭다. 하지만 그것을 겪어내고 보이는 넓은 세상은 찬란하다. 힘들지만 침대 밖을 나오면 보이는 것들을 부디 많은 이들이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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