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7.14
1.
우리 엄마.
(얘기에 앞서 '우리'라는 정감 있는 수사는 정말 이상하기가 이를 데 없다. 따지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난 외동인데 도대체 우리는 누구와 우리란 말인가. 또는, 우리 남편이라거나, 우리 아내라고 해버리면. 그런 게 아닌 것은 알아도 아무튼 마음에 안 든다. 그렇다고 '내' 엄마라고 쓰는 것은 더 이상해서 마음에 더더욱 안 든다.)
예전에도 여기 어딘가에 적어뒀지만, 사람은 오래 보면 누구나 귀여운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특히나 식구인 경우는 보아 온 시간이 상당하니 귀여운 구석을 찾기도 쉽다.
새삼 귀여운 것과 늘 귀여운 정도의 차이지 귀여움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특히나 그런 귀여움을 찾아내는 것에 묘한 쾌감을 두는 나로선 이런 귀여움이 튀어나올 때마다 기록을 해 뒀다가 또 곱씹고 곱씹기를 반복하고 싶어 진다.
그리하야, 며칠 전부터 글감으로 생각해두던 걸 오늘에야 적게 되었다.
2.
며칠 전 냉면을 먹으러 가던 길에,
왜 있잖은가? 분명 벨소리는 뻔한데 유난히 바쁘게 울리는 느낌.
그날 그런 전화가 왔다. 딱히 할 줄도 모르고 해서 그냥 띠로링 거리는 기본 벨을 쓰고 있는데 그게 그렇게 다급하게 들리는 전화였다.
발신자는 엄마였는데 대낮에 딸에게 전화할 일이 뭔가 싶어 냉큼 받았더니 혹시 집이냐고 묻는 거다.
혹시 집에 뭘 두고 나갔나 싶어 무슨 일이냐 급히 되물었더니,
'집이면 TV 좀 켜보라고 할랬더니 안 되겠네.. 알겠어..' 하며 아쉬워하길래 무슨 일이냐 또 물었다.
가끔 홈쇼핑 채널 같은 걸 보다가 전화를 해서 이거 살까, 말까 묻는 때가 있어서 뭘 사고 싶어서 그러나 지레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정말로 웃겼다.
'트라이앵글 보고 있는데 오연수가 너무 못 생겨져서 너도 좀 보라고 전화했어!' 하는 거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터졌다.
그러고 나서도 한참을 이러쿵저러쿵 얘기하다가 무안했는지 서둘러 마무리하고 끊더라는 얘기.
+) 이걸 뭐 오연수 욕하자고 쓰는 건 아닌데 이름을 지우고 쓸지 말지 되게 고민하다가 그냥 쓰는 거다.
이 조그만 블로그에 누가 오나 싶어서.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엄마의 생각일 뿐이다.
사과의 뜻으로 오연수의 레전드 오브 전설의 졸업사진을 첨부한다.
그나저나 정말 예쁘다.
3.
나는 낮술 꿈나무, 준비된 키친 드렁커.
하지만 그저 (가끔) 맛있는 안주를 만들어 놓고,
'아 이런 건 맥주랑 먹어야지! 할 수 없다~' 하며 등 떠밀린 듯 한 잔 하는 정도이니 중독자 칭호를 얻긴 아직 멀었다.
이 얘긴 한 반년쯤 전인가?
죽이는 안주(아마도 치킨커리?)를 만들어서 역시나 맥주를 한 잔 했는데 그날은 엄마와 함께 마셨다.
안주도 그렇고 맥주도 그렇고 분위기도 그렇고.
꽤나 진지한 얘기도 하고 엄마는 살짝 취기가 올랐는지 처음 듣는 어린 시절 얘기도 해주고 뭐 그랬다.
그러다 갑자기 한 마디.
"야! 너는 진짜! 내 딸이니까 참았지, 야... 너는 내 친구였으면 진작에 절교했어!!"
아.. 엄마 미안. 쌓인 게 많았나 보다.
아마도 이건 내가 타고난 얄미움 같은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요즘 부쩍 그것에 대해 생각 중.
(이렇게 검색도 해 보았다.)
+) 엄마가 술에 취해 터놓은 진심은 한동안 가슴에 박혀서 집에서 조금 바스락거리기에도 괜히 눈치가 보이고 그랬었다.
이제 뭐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