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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쉽게웃으미 Oct 23. 2020

더 재미있을 수 있었다

2015.2.28




1.




학창 시절은 즐거웠다.
느긋한 성격 덕에 학업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 않았다.
당연히 걱정거리도 별로 없었고 우등생은 아니지만 선생님들과도 살갑게 지냈다.
마음 맞는 친구와 걸핏하면 영화를 보러 갔고 맛있는 것도 종종 사 먹었다.
월요일엔 전날 받은 일주일치 용돈을 갖고 다른 학교 앞 수입 문구점에 갔다.
한 번도 끝까지 써본 일이 없는 데다 비싸기만 한 필기구와 용건 없는 잡담을 늘어놓을 편지지를 샀다.
학원에서는 중간에 도망가기 권위자가 되었다.
수업과 수업 사이 빈틈을 노려 당당하게 집에 갔는데 아무도 내가 집에 간 줄도 몰라서 다음 날 학원에 가면, '혼내지 않을 테니 어떻게 갔는지만 말해줘, 정말 궁금해서 그래. 언제 간 거니?' 할 정도였다.
여하튼, 갖은 법석을 떨었다.











2.





위에도 적었듯 공부를 빼어나게 잘한 적은 없다.
변명이라면, 공부든 뭐든 다 타고난 만큼만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크게 노력하지 않았던 것.
부모님께서 무언가 사주기로 했다거나 갖고 싶은 것이 생겨 협상의 도구로 쓸 성적표가 필요한 경우라면 모를까 평상시의 나는, '어서 집에 가고 싶다'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은 없었고 좋아하는 과목도 없었다.
수학 선생님을 좋아해서 잠깐 수학에 매진하긴 했으나 그것도 잠깐. 선생님이 유부남인 것을 알고는 이내 흥미를 잃었다. (아아, 나의 흑역사여..)
그저 뭔가 꿈지럭 만들거나 휘리릭 그리거나.









3.





유독 독후감, 글쓰기 같은 숙제를 싫어했다.
글을 읽는 것도 싫어했지만 내 생각을 적는 것은 더 암담했다.
그것을 여럿이 함께 보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우습게도 이제와서는 글 쓰는 것이 좋다.
대단한 글쟁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어째서 가장 싫었던 것이 자연히 좋아진 것인가 생각해봤다.
나는 그저 유치한 청개구리가 아니었나 싶다.
시켜서 하는 일은 싫다.
거의 다 자라 내 또래 애들과 다 같이 어른이 될 무렵, 그 때야 읽고 싶은 것이 생겼고, 쓰고 싶은 것이 생겼다.
이걸 그때 알았더라면! 했던 것은 이것뿐이다.
내가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 공부라 불리는 것 안에 있던 진짜 재미를 찾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쉽다.



물론 이전에도 재미있었지만, 더 재미있을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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