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포절이 끝났다

by 망원경

절대 올 것 같지 않았던 날. 그리고 차마 내가 그 산을 넘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날.


프로포절이 끝났다. 다행히 전전 주 쯤 예비 발표에서 한 번 때려맞은(?) 터이라 사실 그닥 떨리지도, 무섭지도 않았다. 유일하게 든 감정이 있다면 부끄러움이다. 이 분야에 대해, 이 용어에 대해 내가 완벽하게 짚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닥터베르의 웹툰이 떠오른다. 박사학위라는 것은 한 분야에 대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성취를 한 다는 것. 과연 그정도로 읽고 고민했을까? 그 분야에 자신이 없었다.


최근 쓰레드에서 핫 했던 글이 있다. 아카이브에 있는 문서 주소 중 "arxiv" 를 "soarxiv"로 바꾸면 해당 논문이 우주 속에서 유영하는 것처럼, 그 관계를 날아다니며 탐색할 수 있다는.


지금의 AI 혁명을 있게 한 논문, "Attention Is All You Need"를 검색해 본다.

https://soarxiv.org/abs/1706.03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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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압도되는 느낌. 세상의 지식이 이렇게, 우주 속의 별처럼 무한하구나. 그리고 나는 이 사이에서 작은 점 하나를 찍으려 하고 있구나.


별무리를 찾아, 그 중에 밝게 빛나는 별을 찾고 그 빛에 기대어 또 다른 어둠을 비추어 보는 일.

혹 많은 별빛들이 이미 환하게 비추고 있는 곳이라면 하나의 빛을 더하여 더 밝게 비추는 일

그리고 더하여, 아직 빛이 닿지 않은 영역이라면 아주 작은 점 하나이겠지만 그 주변을 밝히는 일


더불어, 공부라는 것은 점과 점을 잇는 것이라는 것. 그러니까 점을 늘어놓는 것이 아닌 점과 점의 연결고리를 찾고, 그 점이 비추지 못한 영역을 찾아 나만의 빛을 만들어나가는 것을 느꼈다. 당연한 진리이겠지만 이렇게 시각화된 자료를 보니 남다르다.


아기돼지 삼형제의 집 짓는 동화를 떠올린다. AI 기술의 발달로, 저 많은 별들을 모아 언뜻 보기에 집의 형태를 가진 모양새를 아주 빠르게 만들 수 있다. 어렵지도 않고, 화려하며 예쁠 수 있다. 그런데 그 집은 늑대의 공격에 금세 무너지고 만다.


좋은 논문이란 저 많은 별빛들 중 내 집에 알맞는 것을 골라 하나 하나 벽돌을 쌓듯 조합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탄탄하게 쌓아 나갔을 때, 늑대(라고 쓰고 교수님들)의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프로포절을 끝내고 보니, 프로포절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검사를 받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10분 남짓한 발표, 15분 남짓한 피드백으로 이를 온전히 재단할 수는 없다. 이걸 통과했다고 해서 연구의 산을 넘은 것, 내지는 이정도도 되었다 라고 셀프 위로할 수 없다. 단지, 늑대의 공격이 조금 약했을 뿐이다. 내 집이 튼튼했는지, 앞으로의 공격에도 안전할지를 성찰해 보아야 할 일이다.


교훈 하나 더. 하루에 나를 수 있는 벽돌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물론 힘이 센 사람이라면 남들보다 몇 장 더 나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에 수백 키로, 수십 톤을 나를 수는 없는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많이 나르더라도 "어떻게" 쌓아나갔는지가 중요하다. 의미 없이 나른 벽돌은 돌무더기에 불과하다.


다행히, 생성형 AI와 각종 툴의 도움으로 나르는 일은 어느 정도 자동화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툴을 활용한 루틴을 만드는 것은 그 벽돌을 나르는 길을 닦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수풀을 헤치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더라면 이제는 인도, 내지는 무빙워크의 도움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나도, 걸어야 한다.


이 길의 끝이 어딜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걷는 과정이 즐거울때까지만 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다행히, 아직까지는 즐겁다. 딱 하루에 즐거운 만큼만 벽돌을 나르고 있다. 나르지 않는 날이 더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는 집의 설계도를 그리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부디 그 집이 지어지는 날까지 계속 즐거웁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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