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후 앞으로는 정기적으로 SRT를 타는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은 경기도 오산. 또 매주 한 번씩 SRT를 탄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늘상 수업을 듣는 월요일이나 화요일이 아니라 목요일이라는 점. 그리고 엄청나게 달라진 점은 그 시간을 "내"가 골랐다는 점. 신분 또한 학생이 아니라 "시간강사"라는 점.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심사 도장을 받으러 찾아뵌 타 과 교수님께서 우연히 영어를 할 줄 아는 시간강사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해 주셨고 으레 하는 소개이겠거니 했는데 진짜로 학과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다. 수업이 가능하냐고. 제가 가능하냐고요? 물론이지요! 시켜주시면 감사하지요!
그렇게 모교에서 시간강의를 시작하게 되었다. 무려 박사과정 대상 논문작성법 강의다. 닿기 전까지는 그저 막연하고 흐려 보였던 꿈 같았던 것. 그것을 이렇게 손쉽게, 우연히 얻게 되었다. 인생의 많은 부분은 운과 닿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운이 찾아 왔을 때 잡을 수 있는 조건이 기가 막히도록 들어맞았다. 거기다 주제가 논문 작성법이라고요? 제가 덕질하는, 조테로와 옵시디언의 사용법을 풀어놓을 수 있다니! 좋아하는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돈까지 준다고요? 매우 땡큐입니다!
조퇴를 하냐고요? 전혀요. 학교가 마치고 바로 수서로 쏜다. 그리고 기차를 탄다. 서울에서 청주로 내려가는 일정. 학교 마치고 이게 되겠나? 싶지만 이 한 시간은 수서역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최애 메뉴 중 하나인 솥밥을 먹고, 후식으로 커스터드 도미빵까지 사 먹어도 뛰지 않고 걸어서 기차를 탈 수 있는 여유있는 시간이다. 또 다른 한 시간은 기차를 타는 시간이다. 계획으로는 내려가는 길에 책도 읽고 논문도 읽고 수업 준비도 해야지 싶었다. 그런데 왠걸? 기차에서는, 여전히 늘 그랬듯이 휴대폰을 만진다. 이에 이번주부터 새로운 루틴(이 단어를 요즘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의 글에서도 발견됨)을 세워보고자 한다(까지 쓰고 긴급한 카톡을 다녀온 뒤). 매번 또 깨지면 어떤가. 내 취미는 루틴을 세우는 것, 그 중 일부라도 살아남으면 그만!
내려가는 길에서는 폰이 아니라 브런치를 켜고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
글감은 이번주의 강의 주제를 톺아보는 것
이번주 주제는 지난주에 이어 핸즈온 워크숍이다. 지난 3주간 선생님들은
좋은 선행연구를 찾기(이 세션 이후 선행연구의 차원이 다르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조테로 설치하기(기본 오브 기본이죠)
선행 연구간 네트워크 그리기(with AI and without AI)
클로드 포 데스크톱 사용법(하지만 유료 계정이 없어 실습X)
'정', '반', '합'의 논리 구조 짜기(with pencil!)를 접하셨다.
오늘의 핵심은, 둥둥 떠다니는 생각을 포착하여 모으는 방법, 옵시디언이다.
플로우는 다음과 같다.
옵시디언 설치하고 개념 익히기. 여기에서의 핵심은 옵시디언은 '로컬'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것
첫 번째 메모를 만들어보고 마크다운 언어를 익히기. ##, # 정도면 충분하다
노트에 '태그'를 달고 노트끼리 '그래프 뷰'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기
핵심은 이거다. 새로운 생각을 할 때마다, 흥미로운 자료를 볼 때마다 이를 잡아내기이다.
이를 위해 '제텔카스텐' 메모 방법을 익힌다.
cf) 참조하여 볼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aNf_vqWZCJc
1) 둥둥 떠다니는 생각이 있는 건 'inbox'에 넣는다
2) 주제별 분류가 끝난 글은 해당 주제의 폴더에 넣는다
*여기에서의 핵심: 하나의 메모에는 반드시 하나의 글감만 넣는다.
*해당 글에 서너개의 태그를 입힌다.
*나만의 태깅 시스템을 만든다.
-나의 경우 #교수님comment #별다섯개 등 손에 익은 태깅 시스템이 있다.
3) 여유가 있을 때 inbox와 폴더 내의 글을 읽는다. 이 중 '영구 기억'에 저장할 글은 별도로 옮겨둔다.
- 참조할 만한 브런치 글: https://brunch.co.kr/@lucy23/12
기술의 발전이 정말 빠르다. 예전에 브런치에 쓴 글, 옵시디언과 조테로를 연결할 방법을 설명할 자신이 없다는 것, 그것이 지난하고 어렵다는 것은 과거의 유물이 되었다. 이젠 클로드 포 데스크톱으로 '자연어'로 조테로의 노트를 옵시디언으로 가져올 수 있다. 거기다 노트끼리 모아 자동으로 분류도 할 수 있다. AI가 초벌로 글을 쓸 수도 있다(이 지점에서 깊은 현타가 왔다. 앞으로 연구자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모든 것은, 바로 옵시디언이 '로컬', 즉 '나'의 컴퓨터 안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클라우드가 아닌,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디바이스에 있는 나만의 메모장.
방법이 너무나 어려워 계속해서 밀어내었던 그 도구.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고 돌아 결국 찾게 되었던 것. 현재까지는 대안이 없는 최선이자 최상의 도구. 오늘 선생님들을 옵시디언의 세계로 초청한다.
덧, 세 시간을 꽉꽉 채운 수업을 마치고. 저 먼 나라의 교육공무원이신 한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Thank you professor. Today's lecture was so good.
오랜 기간 고민한 주제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 하는 것의 일치였다. 그런데 그 이상향에 하나 가까워진 느낌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잘 가르칠 수 있는 것.
아직은 찬 공기의 오송역을 느끼며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를 탄다. 기분이 좋다.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