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ionuk song May 09. 2019

출장의 기억

인간성의 회복 - 독일에서 일하기

어제 밤샜어

브라질, 눈이 빨간 채로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온 같이 출장 온 선배가 본사로 일일보고서를 쓰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고 한다. 불안감이 몰려온다. 제품마케팅 부서 소속인 그 선배와 영업부서 소속이었던 나와는 사실 경쟁 관계였다. 해당 해외 법인의 지역별 유통의 매장 점검이라는 출장의 목적이 같았기에 어느 부서장이 팀장에게 먼저 좋은 보고를 하느냐가 중요했다. 보고가 늦은 부서는 눈치를 먹게 되어 있었다. 제품마케팅 부서와 영업 부서의 포커스가 다르지만 그 선배는 꼭 영업 내용을 보고에 포함했고 항상 칭찬을 받았다. “야 너는 출장 가서 자고 있으면 어떻게 해!!” 부장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아 어제 잠자리가 불편해서 잠을 잘 못 잤어

함부르크, 옆 자리에 호텔 조식을 먹으러 온 독일 사람들이 조잘조잘 떠들어 댄다. 팔목에 차고 있는 티켓을 보니 같은 전시회에 참가하러 온 사람들이다.  10년 조금 안 되게 다니던 삼성전자에서 나와 독일에서 일 한지 4년 가까이 되었지만, 출장을 다닐 때 호텔에 들어오면, 몰려오는 피로감에 일찍 눕더라도 꼭 꼭두새벽에 잠이 깬다. 급할 것 없는데 뭐든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습관처럼 몸을 이끈다. 이 전 직장에서는 출장에서 잠을 잘 자기란 쉽지 않았다. 시차도 시차거니와 주재원들과 늦은 술자리 후에 돌아와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을 보고서를 써야 했기 때문이었다.


잠자리가 불편해서 잠을 잘 못 잤다는 불평은 사치에 가깝지만, 커피를 한 잔 들이켜는 참에 옆 테이블의 투덜거림이 참 인간적으로 느껴지며,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 몸 상태와 내 삶이 우선인 여기 사람들과, 호텔방에 들어오면 이메일을 확인하고 보고서를 쓰고 다음날 할 일에 대한 본사의 지시를 기다리도록, 끊임없는 스트레스와 긴장감을 유지하도록 훈련되었던 내 모습이 대비되었기 때문이다. 해외 현채 임직원들은 일단 제외하고도 수만 명의 이전 회사 동료 선후배 임직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편한 출장을 다닌 사람들도 있겠지만) 잘 살고 있는 그들에게 당신들은 인간답게 살고 있지 않아 라고 말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지만... 인간성, humanity, 인간다움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본다.


내 삶을 그리고 내 아이와 내 가족의 삶을 건전하고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는 권리가 우선되는... 스트레스라는 처방을 받으면 몇 달이고 병가를 낼 수도 있는... 이게 당연한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건 여전히 부러운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통회사에서 디지털 에이젼시로 이직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