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주, 나 물

by 송이안

생물은 조금 못 미치긴 해도 반백년을 살아왔다.

그런데도 철은 없었다.

가벼운 척하며 그것이 무게라 착각했다.

나름 철들었다 속으로 으쓱했다.


엄마, 나 물 좀.

철든 사람이라면서

자기 밥을 스스로 지어먹지 않으며 살아왔다.

자기 공간을 스스로 정리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자기 허물을 스스로 세탁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완벽한 기생.


결국 숙주로부터 쫓겨나듯 시작한 홀로서기.

처음 자력으로 선 생물.

첫 한 달은 의젓한 생물로서 살아내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했다.

밥과 반찬을 단정하게 담아내어 상을 차리고

사진을 찍어 숙주에게 보내 걱정 붙들어 매라는 생존신고를 했다.

아침저녁으로 청소를 해가며 보금자리의 깨끗함을 유지했다.

처음 눌러보는 세탁기의 삐리릭 소리에

찌르르 느껴지는 쾌감!

뽀송한 수건을 아무렇지 않은 듯 가지런히 정돈하는 이 어른의 손길!

반백년 생물은 출근을 늦추거나 재택근무까지 해가며

새로운 시작을 꽤나 즐겼고

세간살이들은 주인장의 힘을 빌어 낮이고 밤이고 최적의 장소를 탐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반백년 생물은 가만히 생각했다.

끝이 없네...

해야 티가 안 나네...

엄마... 힘들었겠다.

그리고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아, 단단한 독립놀이는.

흐물거려서 보슬비에도 저 혼자 거세게 흔들리지만,

일단은 땅에 뿌리를 박고 섰잖아.

지금은... 그걸로 충분해.

이제 정말로 살아보자.


나, 이만큼 철들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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