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왜 다를까
모든 것은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의대에 지원했다.
지원 동기는 '남을 돕기 위해서'이다.
"굿네이버스"에서 간사님과 이야기한다.
입사 동기는 '남을 돕기 위해서'이다.
의사가 되는 방법은 어렵다
그 대신 봉급이 높다
사회복지사가 되는 방법은 쉽다
그 대신 봉급이 낮다
캠페인 봉사를 하면서
여러가지를 떠올리고, 여러가지를 잊어본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왜 이런 글을 쓰는지 모르겠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은 모호한 것 투성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번 글에서는 굿네이버스에서 작성했던 글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굿네이버스, 왜/무엇 했는지. 그리고 학벌과 사회복지간의 관계. 더 나아가 직업에 대한 고찰]
굿네이버스에서 봉사하게 된 이유를 뽑아본다면 지원 시기와 내가 모집 공고를 검색했던 시기가 맞아서이다. 2019년의 나는 맹목적으로 경험을 원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모든 활동에 지원했었다. 대외활동은 진로를 찾기 위한 수단이었으므로 지원 기준은 없었고 2019년 1학기에는 매일마다 대외활동 일정이 잡혀있었다.
그 중 굿네이버스는 나에게 큰 부담이 없는 활동이었다. 내가 주로 했던 봉사는 캠페인 봉사로, 피켓을 들고 다니며 사람들이 우리 단체에 관심을 갖게끔 만드는 활동이었다. 관심 끌게 만드는 방법 중에는, 영상 보여주기 / 스티커 붙이기 / 설문조사 등등의 방법이 있었고 내가 주저리주저리 말 안 해도 한번쯤 경험해봤음직한(당해봤음직한?) 것들을 했었다.
길을 걷다, 누군가가 불쑥 말 걸었던 상황을 생각해보라. 썩 기분 나쁜 추억이다. 그런 의미에서 굿네이버스는 꽤 젠틀했다. 안녕하세요 굿네이버스입니다, 하며 인사만 할 뿐 말을 함부로 걸지 않았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만 영상을 보여주든, 스터커를 나누어주든 했었다.
처음엔 떨렸지만, 하다보니 쉬웠다. 캠페인 나가기 전에 교육도 받고 실습도 해본다. 대본도 얼추 외우고. 어느 정도 연습을 하다보면 실제 사람이 와도 꽤 능숙하게 대응하게 된다.
캠페인 봉사를 진행하며 내 손으로 직접 후원도 이끌어보았다 ! 맨 처음 후원을 받았을 때의 그 희열, 아직 기억난다.
아저씨였는데 감성을 자극하는 영상 한 편을 보고 내 설명을 잠깐 듣더니 상당히 쿨하게 후원신청서를 적고 가셨다. 멋있었고 고마웠다.
외에도 후원 받은 경험이 더러 있다. 인상 깊은 것은 외국인 후원자이다.
다양한 경험을 중시하는 부모님의 신념 아래, 어릴 적부터 방학만 되면 3개월씩 영어권 나라로 유학을 다녀왔다. 덕분에 영어 회화에 있어서 떨지 않는데, 그 날은 과기대에 캠페인 나간 날이었다. 뜨거운 여름날이었으므로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학생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었다. 외국인 여성 2명이 와서 우리에게 관심을 보였는데, 우리 팀은 다들 영어에 자신 없는 면모를 보여주었다. 나도 딱히 잘하지는 않다만 대화는 나눌 수 있으니 이런저런 이야기하다가 굿네이버스 영상을 보여주었다. 영상 시청 하는 그들에게 난 혼신의 힘을 다해 영어로 뭐라뭐라 하였고, 그들은 마음이 동해서 후원을 결심하였다. 뿌듯했다.
이날 후원을 두 건인가 받았는데, 한국말 잘 하는 몽골인도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인 라뽀를 형성한 다음 굿네이버스 이야기로 넘어가는 게 훨씬 후원으로 잘 이어진다. 갑자기 슬픈 영상과 슬픈 문구를 들이대면 반감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천천히 인간적으로 대화를 나누다가 본 게임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 원리는 많은 분야에서 통용하는 듯.
캠페인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굿네이버스 하며 든 솔직한 생각을 이야기해본다.
학벌과 사회복지 관련해 깊게 했던 고찰이 있다.
캠페인 봉사를 하며 한 아주머니와 대화할 기회가 생겨,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미국서 사는 딸 이야기를 해주었고, 그녀 또한 사회복지 일을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과 다르게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봉급이 박하다고, 이런 일 할 거면 미국에서 해야한다고 말했다. 인간은 타인을 그의 유니폼과 그의 위치를 통해 판단하기에 그 아주머니 눈에는 내가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전문적으로 갖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게다. 난 아니었고, 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사회복지사가 돈 못 버는 직업일까? 이 고민은 정말 복잡한 결과를 낳는다.
사회복지라는 업종 자체가 기피하는 분야인 것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왜 기피할까, 힘들고 고되어서?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돈을 못 벌기에 기피한다고 본다. 봉급 탓에 사람들은 사회복지사를 기피하고 이는 점점 진입장벽을 낮추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면 타 직업에 비해 적은 노력으로 사회복지 업무에 종사 가능하고. 그렇게 적은 노력으로 얻은 직업이니만큼 적은 페이가 정당해지는 마법이 일어난다.
남을 돕는다는 직업은 숭고해보이지만 적은 페이 앞에서 사람들은 망설인다. 옳은 가치가 돈 앞에선 맥을 못 추리는 상황이다. 자본주의에서 직업을 해석하는 기준은 봉급의 수준임을 지적하고자 한다.
의사라는 직업을 희망 진로로 정하는 압도적인 이유가 남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인 것을 잊지 말자.
직업의 귀천은 봉급에 따라 해석된다.
위에, 적은 노력이면 적은 페이 라는 관계에서 '정당하다'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주목해야할 대목이다. 이를 학벌과 연관지어보자. 우리는 흔히 학벌이 높으면 고연봉, 낮으면 저연봉이라는 등식이 맞으며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틀리기도 옳기도 하다.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바뀌기 때문인데 예전엔 지극히 맞았다. 이에 대해 더욱 알아보자.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미국사회에 깔린 풍토를 뒤집었다. 그 당시의 풍토란, 노력이 모든 것이라는 것. 즉 노력만 한다면 누구나 돈을 잘 벌 수 있고 누구나 유명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가치관의 생성은 미국 역사와 관련이 깊다. 영국에서 종교적으로 박해받던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에 가서 자유롭게 사려고 미국에 건너왔다는 사실. 이민자였던 청교도의 사상은 자본론과 굉장히 적합해서 미국의 부흥을 이끌었다. 이를 잘 서술한 저서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으로, 미국의 자유주의 사상은 그 뿌리부터 굉장히 탄탄했다는 것을 밝힌다. 미국의 가장 큰 단점은 역사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다. 미국의 기원 자체가 새로운 사람들로 꾸려졌음을 잊지 않는다면, 혈통과 신분에 상관없이 노력하면 누구나 잘 된다는 슬로건은 합리적이었을 뿐더러 매력적임을 알 수 있다.
이 사상을 우리 본론에 접목시켜보자. 노력(공부)을 많이 한 사람들은 좋은 대학엘 간다. 좋은 대학에 간 사람들은 좋은 직업을 갖는다. 이에 대한 역은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노력을 많이 한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좋은'은 쉽게 '돈 잘 버는'으로 치환 가능하니, 돈 잘 버는 사람들은 노력을 많이 한 사람들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부자를 부러워하면서도 질투하고 존경하며 시기한다.
세상은 바뀌었다. 난 인기를 끄는 것들에는 심오한 이유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으로,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 셀러가 된 것은 의미깊은 사건이라고 해석한다. 이 책에서 마이클 센델은 미국이 가장 중요시하는 가치인 '공정(혹은 정의)'을 재해석한다. 그 요지는 이렇다. 스타트 라인이 다른 사람들에겐 특혜를 주어야한다는 것. 개인의 노력 이상으로 안 되는 한계가 있으므로 사회 구조를 재점검해야한다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공정이라는 것이다. 현 시대를 견인하는 이 사상은 연결고리의 시작점인 ‘노력’에 태클을 건다. 노력 자체가 이미 구조적으로 다르게 설정되었기에 불평등한 구조 속에 놓인 한 개인은 아무리 노력해도 유리한 구조 속 개인을 절대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복지로 돌아와 수식을 거칠게 만들어보자면 이러하다.
사회복지 - 진입장벽 낮음 -> 학벌이 낮은 사람 -> 사회복지사 -> 더 낮은 진입장벽이 조성 -> 더 낮은 학벌 - > 사회복지사 천대
진정한 공정에 의하면 이러면 안 된다. 봉급이 낮은 사회복지사는 천대받아 마땅하지 않다는 것. 직업이 미천하다고 하여 무시하는 행태는 드물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면모는 그렇지 않다. 요즘엔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여론이 사회적으로 대세인 실정으로, 겉으로 보기엔 모든 직업이 평등하고 귀하다. 그러나 그 직업인에 대한 차별은 없어도, 특정 직업이 갖는 봉급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로 인해 그 직업인은 일상 생활 속 많은 차별을 당한다.
우리네 삶에서 상대적 빈곤은 차별을 느낄 수밖에 없게 만든다. 결국 인식적인 측면 외의 실질적인 면에서도 보완이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사회복지'라는 분야는 상당히 넓다. 쉽게 생각해서, 서울대에도 연세대에도 고려대에도 사회복지학과가 있으며 그들은 또 나름의 방식대로 돈을 잘 받을 것이다. 기획하고 협력하며 소통하는 직무에 놓여, 사회복지의 판을 그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난 그 말단의 위치에 놓여본 입장으로, 위에서 내려온 정해진 기획들을 캠페인으로서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내 주위에는 사회복지 분야의 가장자리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이 하는 일들을 내가 해보니 이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왜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돈을 적게 받아야하지, 하는 마인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은 그들도 밥 벌어먹기 위해 그 직업을 택한 것이라는 것. 그들에게 윤리적 잣대를 과도하게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같이 생활해본 바로는, 처음에는 도덕적 태도 없이 성적 맞춰 현실에 맞춰 사회복지사라는 직업을 택하게 되었더라도 그 직무를 수행해가며 조금은 따듯한 마음이 깃들었구나 (혹은 깃들겠구나) 하는 것이다. 그러니 좋은 일 하는 사람들이 왜 돈을 적게 받아야하는 것에 대한 문장은 지워지지 않았으며 이에 대한 고민은 나에게 계속 남아있었다.
고민의 과정을 한번 펼쳐보았는데, 이제는 간략하게 내 선에서 해결방안을 내고 글을 마무리지어보고자 한다.
우리가 먼저 풀어야할 것은 가장 첫번째의 연결고리. 왜, (캠페인을 진행하는) 사회복지사는 돈을 안 주는 직업이 되었을까?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간단해서이다. 그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진입장벽이 낮으면 낮을수록 페이는 적다.
우리 팀 간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캠페인으로써 성사된 후원양과 후원 빈도에 따라 봉급이 달라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자신이 보험 영업 사원과 무엇이 다른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주었는데, 이를 통해 과격하게나마 이유를 적어볼 수 있겠다. 즉 (캠페인 봉사를 진행하는) 사회복지사의 업무는 다양하겠지만 사회복지사의 업무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캠페인-후원이고, 이 캠페인 활동은 비전공자인 나도 조금만 교육받으면 가능한 쉬운 업무인 것이다.
진정한 공정에 대한 지점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내 입장을 드러내보자면, 난 간단한 업무가 낮은 봉급을 받는다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본다. 진정한 공정의 ‘과정’은 이루어져야겠지만, 무식하게 ‘결과’만 놓고 보겠다고 가정하면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높은 봉급이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보다 수정된 자본주의가 좋은 것처럼, 영국의 과도한 방임주의가 많은 폐해를 낳았던 것처럼 어느 정도 수정의 과정을 거쳐 국가의 개입은 허용될 필요가 있다. 이 어느 정도가 대체 '어느 정도'인지 사람을 미치게 만들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로 사회복지사 - 낮은 봉급 간의 핵심고리를 끊어보자면,
사회의 취약한 부분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 혹은 집단들에게는 어떤식으로든 국가적으로 보조를 해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허나 유니세프 , 정의연 사태 등의 후원단체 비리 사건은 이런 주장을 쏙 들어가게끔 만들기도 한다.
머릿속에 입시 개혁밖에 없던 고3은 수능이 끝나면 입시 제도 나 몰라라, 대학 생활 어떻게 하면 잘 즐길 수 있느냐만 고민하듯이 나 또한 사회복지사에 대한 처우는 엄연히 남일의 차원으로 생각되어 평소에 큰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그러나 다양한 경험을 해보려는 노력 탓에 사회복지 분야에도 발을 넣어봤었고 문제점이 있음은 알게 되었다.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는 것을 싫어하므로 현재를 긍정하고 싶지만, 굳이 하나 껴넣자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이 잘 됐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가끔 하곤 한다.
by JU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