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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일학년담임 Jun 22. 2015

무겁다, 1학년 아이들의 눈물

1학년 아이들의 집중력은 3분.
어떤 상황이든 그 시간이 넘어가면 산만해진다.
마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나이인데다
자신의 주의를 자극하는 것이 주변에 너무 많은 까닭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신체활동을 시켜서 발산을 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시골학교의 넓디 넓은 학교정원만 한 곳이 또 있을까.



황사가 물러간 다음날이었다.
아이들과 운동장에 나가 보았다.
각자 자기가 가장 먼저 뭐하며 놀고 싶은 지 물어보았다.
잠시 후, 아이들은 각자의 놀이터로 내달렸다.
또 잠시 후, 혼자 놀기가 심심한 아이들이 끼리끼리 모이더니

누구는 친구들의 그네를 밀어주고
또 누구는 축구를 하고
그래도 심심한지 떼로 정글짐에 올랐다가
교무실 앞 소나무에 매달리기도 하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서 시소를 타거나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그러는 와중에
어떤 두 아이가 그네를 서로 먼저 타겠다고 다투다 한 명이 울었다.

별 시비랄 것도 없었다. 한 아이가 힘으로 밀어부친 것이다.

밀려난 아이는 서럽게 울었다. 어디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난 그 옆에 몇 발짝 떨어져 있으면서 책에 빠진 척, 얼굴을 돌리고 적당히 못 본 척 하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이 인적 드문 학교 정원에 퍼졌다.

곧 다른 아이들이 놀이를 마치고 모여들었고, 힘으로 밀어낸 아이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나에게 와서 그 아이를 혼내라고 요구했다. 내가 미적미적하자 다시 그 아이에게 몰려가 계속 나무랐다.

비난을 받던 아이는 처음엔 안 그랬다고 잡아 떼다가 아이들의 비난이 높아 지자 욕을 했다. 지랄하지 마.


난 억울하면 같이 따져도 되지만 욕은 하면 안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 아이가 내 눈빛을 읽은 걸 확인하고 나서 다시 몇 발짝 옆으로 물러나 읽던 책을 들었다.

그랬더니 이번엔 아이들이 그 아이에게 욕을 했으니 빨리 미안하다 그러라고 다그쳤다.

아이는 들릴락 말락 무슨 욕을 하는가 싶더니 이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 아이가 그네 옆 오동나무 밑에 가서 앉아 얼굴을 덮고 울자 아이들은 다시 자기들의 놀이터로 돌아갔다.

8명의 1학년 아이들. 그 아이들이 국민인 이곳, 작은 공화정에서 뭉친 다수의 여론이 힘 있는 소수를 이기는 순간이었다. 난 끝까지 책을 읽는 척했다.


그리고 잠시 후,

어떤 아이는 벗어 놓았던 잠바가 땅에 떨어져 모래가 묻었다고 울었고 어떤 아이는 손이 나무에 긁혀 울었다.

1학년 아이들의 눈물을 어떤 이가 가볍다 할 것인가.

아이들의 눈물은 어떤 상황에서도 정당하다. 오늘 운 아이들은, 나의 극진한 간호를 받았다.

교무실 앞 수돗가에 데려가  눈물의 흔적을 닦아주었다. 훈장인 셈이었다.


각자 자기 앞에 당면한 삶의 문제로 울고 웃으면서 아이들은 오늘 하루도 치열하게 자란다.

아이들이 각자의 감정에 휘둘려 울거나 웃는 동안, 난 적당히 개입을 하거나 혹은 모른 척 한다.

울어야 성장하는 아이는 많이 울수록 모난 성격이 둥그렇게 될 것이다.

친구들의 나무람을 들어야 하는 아이는 아무리 성질을 내며 버텨도 친구들 여럿의 여론을 거스르지 못할 것이다.

학교 들어오기 전에 모난 성격들이 고쳐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아이가 지금 울 것을 미리 울었더라면, 그래서 지금은 다른 아이들 섞여 해가 지도록 능숙하게 놀 줄 알게 되었더라면.

그랬다면 굳이 놀이시간에 그리 서럽게 울지 않아도 됐으련만.

그랬다면 울면서 제 엄마를 부르느라 목이 쉬지 않아도 됐으련만.

그랬다면 그 아이의 엄마가 일터에서 달려 와 자기 아이의 눈물을 보고 속상하지 않아도 됐으련만.

늦었지만, 이제라도 울어서 성장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아이의 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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