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박력의 차이
질문 :
3학년 남자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들을 툭툭 건드려서 걱정입니다. 며칠 전, 점심시간에 앞자리에 끼어든 친구를 밀어서 식판을 엎어 아이를 울린 적이 있습니다. 아이 말로는 세 번을 참았는데도 친구가 끼어들고도 약까지 올려서 화가 많이 났대요. 그런데도 담임 선생님은 자기만 잘못했다고 야단을 쳤대요. 또 전에 친구가 먼저 욕을 해서 싸웠는데 선생님은 자기가 욕한 것만 혼내셨대요. 얼마 전, 운동회 날엔 자리 문제로 옆 아이와 싸웠는데 제가 아이들 뒤에 있어서 다 봤습니다. 제 생각엔 두 아이 모두 잘못을 한 걸로 보였는데 주변 친구들은 모두들 제 아이만 나무라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아이가 평소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 장면을 근처에 있던 다른 부모님들도 다 봤네요. 속상했습니다.
제가 평소에도 친구를 때리면 절대 안 된다고 매일 얘기하는데도 말을 잘 안 들어요. 아이는 평소 다른 아이보다 좀 과격한 놀이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다친 적도 있어요. 아빠에게 종아리도 맞고 자주 혼나도 잘 고쳐지지 않아요. 아빠가 조금 엄격한 편이라 아이가 잘못하면 따끔하게 혼을 내는데 요즘엔 아빠에게도 반항입니다. 얼굴이 벌겋게 울면서 막 대들어요. 아이는 아빠를 무서워해서 직접 말은 못 하지만 저에게 아빠에 대한 불만을 자주 말해요. 그럴 때마다 제가 아이와 아빠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담임 선생님은 아이가 분노조절이 잘 안 되는 것 같대요. 더 늦기 전에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라고 하십니다. 수업을 방해되고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준대요. 선생님의 지시도 잘 안 듣는대요. 선생님이 이리저리 돌려가며 말씀하셨지만... 엄마가 잘못 키워서 아이를 폭력 소년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상담을 했습니다. 선생님도 제 아이 잘못이 더 크다는 뜻으로 말씀하셔서 서운했습니다. 올해 선생님뿐 아니라 이전 선생님도 제 아이를 불편해하셨어요. 교사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니 아이가 학교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지 상상이 됩니다. 아이 아빠는 이렇게까지 학교를 보내야 하냐고 하네요. 학교를 옮겨볼까요? 아빠는 직장 때문에 서울에 있어야 하지만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지방의 대안학교로 전학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늦게 얻은 아이라서 버릇없을까 봐 일부러 엄격하게 키운 편인데 자꾸 힘든 쪽으로 흐르네요. 선생님 보시기에 대안학교나 시골의 작은 학교로 보내면 아이가 나아질까요? 혹시 추천하신다면 어떤 형태의 학교가 좋을지도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 :
아이고... 걱정이 크시겠어요. 폭력적인 아이는 키우기 힘들거든요. 그런데 이런 아이들은 의외로 흔합니다. 한 반에 한 두 명은 꼭 있지요. 님의 아이도 그중 한 아이일 뿐입니다. 3학년이면 아직 희망이 있는 나이입니다. 아이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부모님이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님의 아이와 같은 나이인 이 세상 모든 3학년 아이들은 지금까지 10년째 자라오면서 여러 성장환경을 지나왔을 겁니다. 그 환경이 아이가 타고난 성향과 결합되어 한 개인의 인격을 이뤘겠지요. 원래 모든 인간은 내면에 폭력성을 지니고 태어나 그걸 통제하면서 살도록 진화했는데 님의 아이는 공교롭게도 잠재되어 있어야 하는 폭력성이 겉으로 튀어나왔습니다. 그 걸 가능하게 된 데는 어떤 환경의 영향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이가 원래부터 나쁜 아이였을까요? 아닐 겁니다. 그런 아이는 없으니까요. 그런 아이를 폭력 아이로 만든 건 뭘까요? 먼저, 보내주신 내용을 가지고 하나씩 짚어가며 설명해 보겠습니다.
* 친구들을 툭툭 건드리는 아이
툭툭 건드린다는 건 시비를 건다는 말이지요? 시비를 걸면 상대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받습니다. 그러면 멈춰야 하는데 님의 아이는 이걸 계속하는 거지요.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것, 이게 폭력입니다. 그러면 이런 폭력성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진화 심리학자들은 폭력성이 인간의 DNA에 기본으로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누구나 폭력성을 지니고 타고난다는 뜻이지요. 그러니 님의 아들의 폭력성은 일단 아이 잘못이 아닙니다. 그저 타고난 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인 거예요.(리처드 도킨스 지은 '눈먼 시계공') 인간은 왜 하필 폭력성을 지니고 태어났을까요? 달팽이처럼 순한 성격이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학자들은 인간의 폭력성의 근원을 원시의 수렵활동에서 찾습니다. 인류가 생존하려면 뭔가를 잡아먹어야 했습니다. 잡기 위해선 죽여야 했고요. 죽이려면 찌르고 때리고 베어야 합니다. 찌르려면 찔렀을 때 나오는 피의 냄새와 선홍색 빛깔, 상대를 찌를 때 나의 손에 전해져 오는 물컹한 느낌을 극복해야 합니다. 피를 두려워하면 살아서 진화하지 못했겠지요? 호모 사피엔스 20만 년의 세월 동안 우리 인간은 99.99%의 시간을 잔인한 동물 사냥으로 보냈습니다. 이 역할은 주로 남자의 몫이었지요. 동물을 더 쉽고 빠르게 죽이는 인간이 인기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그들의 자손은 그 당시 인기가 있었을 테니 짝짓기에도 더 유리했습니다. 그 결과 그 후손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후손보다 더 많이 살아남았지요. 이렇게 인간은 폭력을 통해 사냥을 해서 먹을 걸 확보했고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이웃 부족과 싸워 죽이면서 살아왔습니다.(유발 하라리 지은 '사피엔스') 인간의 폭력성은 아직 우리 생활 곳곳에 '공식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순화되었다고나 할까요? 올림픽이 대표적이지요. 권투나 태권도를 보세요. 사람들은 이제 태권도를 통해 사냥을 할 필요가 없는데도 여전히 올림픽이 되면 태권도를 보려고 TV 앞으로 모입니다. 제 생각엔 그런 행동이 인간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폭력성의 대리 표현인 것 같아요.
다시 님의 아이에게 돌아가 님의 아이가 최소 1만 년 전에만 태어났다고 가정해 봅시다. 님의 아이는 부족에서 최고의 전사로 대접받을 겁니다. 폭력을 행사해서 사냥을 하거나 적을 막는데 두려움 없이 나서니까요. 어른으로 성장하면 당연히 부족의 우두머리로 뽑힐 겁니다. 이웃 부족을 정복하고 경작지도 넓힐 겁니다. 당연히 부족에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 아이 낳아 기르는 일 또한 다른 남자보다 수월하겠지요. 죽으면 큰 고인돌 무덤에 묻히고 후손들에게는 영웅으로 기억되는 건 물론이고요. 하지만 아쉽게도 님의 아이는 현대에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영웅대접은커녕 선생님과 친구들, 심지어 엄마 아빠에게도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럼 요즘 사람들은 왜 원시 시대에 난무하던 폭력성을 잃어갈까요? 교육 때문입니다. 어릴 때부터 폭력은 나쁘다,라고 배우잖아요. 교육의 힘이 참 무서워요. 똑같이 아기로 태어난 사람이 누구는 교육에 의해 위대한 성직자가 되기도 하고
아인슈타인이나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도 되잖아요. 그래서 다들 학교에 보냅니다. 물론 교육으로도 안 되는 사람들도 있죠.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이 사람들도 피해 갈 수는 없어요. 감옥이라는 제도가 있으니까요. 이렇게 폭력적인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거세니 과거 수렵시대의 싸움대장은 설 자리가 없어요.(미셸 푸코 지은 '감시와 처벌')
* NO ANGER WITHOUT FEAR
님의 아이는 다른 아이에 비해 화가 많아 보입니다. 다툰 상대, 학교 담임 선생님, 심지어 아빠에게까지 화가 나 있군요. 화에 대해 설명하는 책들을 보면 하나같이 화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립니다. '사람이 화를 내는 건 불안해서 그렇다'는 거지요. 운전할 때 누가 위협 운전을 하면 화가 납니다. 왜 그런가요? 내가 사고나 날까 봐 불안해서 그렇잖아요. 내 돈을 소매치기당하면 화가 나는 것도 내가 돈 없이 살 상황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내가 돈 많은 부자라면 잠시 기분은 나쁘겠지만 화까지 나지는 않지요. 그런 점에서 님의 아이도 불안한 게 많아서 화도 많을 겁니다. 불안이 많다는 건 불안에 관해 예민하다는 의미도 됩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어떤 불안 때문에 화를 내는지 들여다봐야 합니다.
* 나만 잘못했다고 야단치는 담임 선생님
아이의 이 표현에서 우린 두 가지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첫째, 아이는 자기 잘못을 모릅니다. 자기 행동에 대한 판단이 잘 안되고 있어요. 자기가 친구를 밀어서 식판을 엎었잖아요. 친구들을 놀라게 하고 담임 선생님이 그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드렸잖아요. 그런데도 아이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릅니다. 오로지 친구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집중하네요. 보통 이런 아이들과 상담을 해보면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 친구가 먼저 저를 놀렸잖아요. 저는 충분히 억울한 일이라고요. 그러니 그 친구는 벌을 받아야죠. 선생님이 벌주지 않아서 제가 제가 직접 혼내 준 거예요. 친구가 식판을 엎을 정도로 세게 민 건 너무 한 거 아니냐고요? 그게 무슨 문제냐고요. 저를 화나게 했으니 당연히 벌 받아야죠. 그 친구 때문에 제가 화가 났으니까 전 밀어도 되죠. 그래서 떠밀었는데 선생님은 왜 나를 야단쳐요? 선생님이 나쁜 사람이라서 그래요."
혹시 님도 아이와 같은 생각을 하시나요? 제 생각에 아마 그러실 겁니다. 아이는 부모님이 분노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어릴 때부터 봐 왔어요. 그걸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면 습관이 되어 아이가 자기의 분노를 해결할 때 자동으로 그 방식을 불러옵니다. 이런 아이가 어떤 행동 수정의 기회도 없이 성장해 어른이 되었다고 가정해볼까요? 사소한 이유로 아내를 들볶거나 툭하면 두들겨 패는 남편들, 단지 자기가 화가 났다는 이유로 어린아이들에게 욕을 하거나 때리는 부모들, 술만 마시면 폭력배로 돌변해서 식당 종업원이나 근처 손님에게 행패 부리는 취객들, 자기가 돈 주고 부려먹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모욕하는 고용주들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문제 있다는 걸 모릅니다. 단지 자기 기분이 나쁘니까, 화가 났으니까 함부로 합니다. 그렇게 화를 풀면서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내가 화났다는 사실만 중요해요. 그래서 그렇게 난리를 하면서도 책임은 없다고 생각해요. 내가 화 나서 친구를 밀어 식판을 엎어 울려놓고도 그건 우는 아이 책임이니까 내가 사과하거나 식판을 집어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난 화가 났으니까요. 그것만이 중요하니까요. 이런 사람들, 공통점이 있어요. 공감능력 부재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도 어렸을 때, 님의 아이와 비슷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뒤집어 보면, 님의 아이가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게 될 경우 이런 어른이 될 수 있어요. 무시무시하지요? 네, 하지만 사실입니다. 그래서 심각한 일이고요. 그러니 이번 기회에 꼭 바로 잡아 보세요.
둘째, 아이는 교사의 말을 수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이는 오히려 자기의 잘못을 지적하는 담임을 상대로 서운해하고 있습니다. 역시 공감능력 문제입니다. 자기를 화나게 한 친구를 혼내 준 것뿐인데 이상하게도 담임 선생님은 오히려 나의 복수에 대해 야단칩니다. 그러니 억울한 마음이 들지요.
"제가 화났는데 무조건 참아요? 친구가 저를 놀렸잖아요 그래서 떠밀었죠. 식판을 엎은 건 그 친구 잘못이죠. 제가 화났다고요. 그럼 그 친구도 제가 화난 것만큼 손해를 봐야죠. 그걸 참으면 저만 손해잖아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아이가 학교가 좋을까요? 아니겠지요. 친구도 싫고 선생님도 싫을 겁니다. 그러니 학교에서 하는 공부도 싫겠지요. 학교에 있는 모든 구성원은 짜증의 대상입니다. 심지어 교실 문조차도요. 이런 아이들은 교실 문도 살살 안 닫아요. 꽝 닫지요. 아이의 모든 행동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님의 아이는 왜 이런 생각을 할까요?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3학년이면 이제 겨우 9년 남짓 살았는데 아이는 부모님이 감당하기 힘겨울 정도로 폭력적인 아이가 되었잖아요. 이걸 설명하기 위해서는 들으시기에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질문을 보면, 님이 아이의 이런 태도를 은근히 지지하시는 것 같아요. 또 아이를 야단친 교사에 대해 서운해하십니다. 심지어 아이가 문제행동을 할 때 엄마인 님은 그 자리를 피하고 싶어 하십니다. 운동회 날, 님의 아이가 옆 아이와 싸우는걸 그냥 보고만 계셨잖아요. 서둘러 개입해서 다툼을 말리고 아이들을 달래려는 마음 대신 내 아이를 다른 아이들이 미워하나 안 미워하나를 관찰하셨습니다. 문제행동을 일으키는 아이의 부모님들은 이런 태도를 지닌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싸우는 당사자가 님의 아이잖아요. 자기 아이가 문제 행동하는 걸 여러 사람 앞에서 들키는 것 같아 선뜻 나서기 힘드셨을까요? 다른 아이의 부모들이 그 장면을 보고 '도대체 아이를 어떻게 키우길래 이런데서 싸우고 있는 아이의 엄마'라고 확인받게 될까 봐 그러셨겠지요? 아이의 폭력성에 대해 부모님과 상담하다 보면 다들 이런 속내를 말씀하시더라고요. 식당에서, 공공장소에 아이가 거칠고 위험한 행동을 보일 때 일부러 모른 척하고 '내 아이 아닌 척'하는 심리 말입니다. 저는 그게 걱정스럽습니다. 엄마가 아이의 현실(폭력성, 분노조절 어려움)을 직면하고 해결하려 하지 않으면 아이 행동은 누가 고쳐주나요? 교사가 아무리 나서도 부족합니다. 교사는 학교 안에서만 영향력이 있지요.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하루에 5,6교시에 불과하잖아요.
하지만 엄마로서 할 말도 있습니다. 아이가 문제행동을 하던 초기에는 엄마도 담임의 안내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처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이의 행동이 나아지지 않게 되면 슬슬 지쳐갑니다. 그래서 학교에 상담을 오라고 해도 이런저런 이유를 대면서 참여를 안 합니다. 아이에 대해 의논하려고 전화를 해도 전화를 안 받거나 받아도 담임에게 따집니다.
"아이를 아무리 타일러도 말을 안 듣는데 어쩌겠느냐. 나도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 내가 잘 못 가르치니 학교에 보내는 거 아니냐. 당신이 선생이니까 당신이 가르쳐 달라."
오죽하면 이렇게까지 나오실까요. 이쯤 되면 자식을 키우는 일은 형벌이지요. 이런 부모님을 상대로 상담을 하고 아이의 행동을 변화시켜야 하는 일이 교사의 일입니다. 그런데 상황을 외면하려는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부터가 저는 참 힘들더라고요. 아이를 변화시키려면 담임 혼자는 절대 불가능한 건 부모님도 잘 알고 계시지요. 하지만 엄마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상황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까지 드는 거지요. 이런 부모들의 태도를 교사들은 잘 압니다. 늘 보는 일이니까요. 저도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선생인 내가 아무리 노력하면 뭐 하나. 아이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과 같다 어떤 교육도 소용없지. 괜히 학부모에게 잘 못 얘기했다가 왜 자기 아이만 미워하냐고 민원을 내면 나만 힘들잖아. 에이, 그냥 아이가 더 이상 사고만 안 치게 적당히 감시하면서 일 년만 참자. 내년에 다음 학년 올라가면 그다음 담임이 어떻게 하겠지."
하지만 교사까지 이런 식으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가 너무 가엽잖아요. 아이는 결국 제대로 된 교육적 처치 한 번 못 받아 본 채 유년기, 청소년기를 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부모와 교사가 힘을 합해 아이를 변화시켜 친구관계를 회복하고 학교 생활을 즐겁게 바꿀 수도 있을 텐데 말입니다. 마치 일찍 병원에 데려 가 의사가 조금만 노력하면 간단히 고칠 수 있는 병을 지닌 아이를 미루다 큰 병으로 키운 나머지 아이가 평생 고통을 당하며 살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에게 죄를 짓는 일이지요. 청소년 범죄로 수감된 어떤 아이의 글에서 표현된 유년기에는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가정, 학교, 사회 그 어디에서도 난 사랑받지 못했다. 엄마에겐 부끄러운 아들, 선생님에겐 골칫덩어리였다."
아이가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서 억울해할 때 엄마는 어떻게 대응하셨나요? 아이가 그걸 억울해하지 않으면서 자기의 상황을 인지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하게 안내해 주지 않고, 오히려 아이에게 동조하거나 끌려간다면 아이는 앞으로도 자기의 폭력적 행동이 옳다고 생각하고 이를 더 강화하게 될 겁니다.
* 제가 아이와 아빠 사이에서 난처합니다.
님은 아이의 문제 해결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심하게 표현해 볼까요? 님은 아이의 문제를 외면하려고 하고, 툭하면 아빠에게 떠넘기고 있습니다. 아이가 야단맞을 때, 님은 아빠와 같은 편에 아이의 행동을 나무라지 않는 편이지요? 오히려 아빠가 아이를 야단치지 말거나 야단치더라도 가볍게 하기를 바랍니다. 아이가 가여워서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아이는 엄마의 이런 태도를 본능적으로 읽어냅니다. 그래서 아빠에게 야단 맞고 나서 그 불쾌감과 적대감을 자기 편드는 엄마에게 드러냅니다. 아빠가 나를 야단치는데 엄마 표정을 보니 아빠 편이 아닌 내 편을 드는 것 같다면 야단치는 효과가 줄겠지요. 엄마가 자기편을 드는 걸 아이는 어떻게 해석할까요? 자기가 아빠에게 야단맞을 정도로 나쁜 짓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자기를 야단치는 아빠만 나쁜 아빠인 거지요. 엄마가 아빠와 한 마음으로 아이를 야단치거나 조언하면,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 아빠가 한 목소리로 나를 야단치는 걸 보니 내가 정말 잘못하긴 했나 보다, 생각하고 자기 행동을 돌아보기라도 할 텐데요. 결국 님의 태도 때문에 아빠와 아이는 더 나쁜 사이가 됩니다. 우리 사회엔 이런 일로 아버지와 서먹한 아들들이 너무 많습니다. 아버지는 야단치는 존재, 엄마는 뒤에서 아들을 감싸고 아빠의 훈육을 비난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쿨하게 유지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엄마가 필요합니다. 야단칠 땐 치고, 아이가 반성한 다음에 아이를 더 뜨겁게 감싸주면 아이는 자기가 혼날 짓을 해서 야단맞았고, 그걸 반성하고 다음에 안 그러려고 노력하면 아빠도 자기를 믿어준다고 느끼겠지요. 자연히 아빠와 사이도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 더 늦기 전에 정신과 상담을 받아 보라고 하시네요... 엄마가 잘못 키워서 아이를 폭력 소년으로 만들었다는 식이네요... 저도 이런 학교를 더는 보내기 싫어요.
죄송하지만, 저도 님의 담임 선생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아이의 문제행동을 인식하고 개선하기보다 일단 편들어 감싸려는 엄마의 문제점은 제가 위에서 설명드렸지요? 이런 상황에서 엄마가 쉽게 행동을 바꾸시기가 힘들 거라는 걸 담임교사도 알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전문가를 만나라고 하는 겁니다. 담임교사의 그 말에 그동안 열심히 아이를 키워온 엄마로서의 존재를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으셨지요? 그래서 속상하고 화나셨잖아요. 학교 보내기 싫다고요. 하지만 기분 나쁘셔도 할 수 없어요. 그게 맞으니까요. 담임이 봐도 엄마가 아이 양육에 소극적이고, 아빠의 훈육에서도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걸 보니 이젠 전문가의 입을 빌어 엄마와 아빠를 아이의 치료에 강력하게 개입시키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런데 님은 이것 또한 엄두가 안 납니다. 피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차라리 전학을 가겠다고 하신 거지요. 하지만 여기서 물러나면 님은 아이가 성장하는 내내, 어른이 되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후회와 죄책감을 지니고 사셔야 할지 몰라요. 생각해 보세요. 이제 겨우 10살짜리 아이가 저렇게 친구와 못 지내고 만날 쌈박질인데 그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 어떻겠습니까? 설마 머리 크면 저절로 나아질 거라는 근거 없는 긍정에 빠져 계신 건 아닙니까? 그런 일은 없거든요. 아이의 사회성은 이유 없이 좋아지는 법은 없어요. 만약 아이가 이대로 더 커서 청소년이 되면 아이는 위험한 인물이 될 수 있습니다. 고등학생만 돼도 한 번 날린 주먹이 큰 상해를 일으킬 수 있어요. 사람이 다치죠. 당연히 학교폭럭위원회(학폭위)에서 징계(퇴학이나 전학 등)를 할 거고요. 그때 가서도 아빠가 과연 아이를 야단칠 수 있을까요? 오히려 그때가 되면 아들에게 맞을까 봐 피해 다녀야 할걸요. 그러길 원하세요? 그러니 지금, 아이가 아직 어리고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을 때 전문적인 치료를 하시라는 겁니다. 초등학교 교사인 저도 가끔 부모님들께 치료를 권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물론 쉽지 않지요. 멀쩡한 애 정신병자 만드냐고 부모님들께 욕을 먹는 게 태반입니다. 교장실로, 교육청으로 항의 전화하고 난리도 아닌 적이 많았어요. 그래도 저는 권하고 싶습니다. 전문가들은 아이만 치료하지 않고 아이를 양육하는 어른들에게도 아이를 대하는 방법을 세심하게 안내합니다. 검사를 하면 부모의 어떤 양육태도가 아이의 폭력성을 자극했는지 다 나오거든요. 하지만 검사를 하고 일단 치료가 시작되고 아이의 행동에 변화가 오는 걸 보면 부모님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요즘 전문가들은 정말 기가 막힌 방법으로 아이를 치료합니다. 막상 해 보시면 깜짝 놀라실 겁니다. 만약 그래도 전문가를 찾아갈 상황이 안 되신다면 아이에 대해 비교적 설명이 잘 되어 있는 책이라도 보세요.
* 대안학교나 시골의 작은 학교로 보내면 아이가 나아질까요?
아닙니다. 흔히 도시의 큰 학교에서 적응 문제를 겪는 아이의 부모님들이 이런 질문을 해오시는데요. 만약 아이가 도시에서 자라면서 공부 스트레스가 많아서 부적응 문제가 나온 거라면 효과를 보실 겁니다. 그게 맞다고 해도 굳이 시골로 보낼 거 뭐 있습니까? 그냥 도시에서 키우면서 공부를 덜 시키면 되잖아요. 도시 아이들은 무조건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법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근데 재미있는 건, 정말 이런 이유로 시골 학교나 대안교육을 하는 분들을 봤어요. 이해는 안 갔지만요. 부모님 스스로 자기가, '그래도 내가 도시에 사는 엄만데 아이 공부 안 시킨다는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시골로 가서 일부러 공부 안 시키는 데 앞 선 엄마인 척하고 싶은 마음'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런 경우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 먼저 아이의 의사를 분명히 물어보고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겁니다. 아이는 아무 생각 없는데(3학년 남자아이가 아직 그런 생각 할 나이는 아니죠) 엄마 자존심 때문에 움직일 일은 아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님의 아이처럼 친구들과의 적응 문제라면? 그러면 대안학교 보내도 효과가 없습니다. 대안 학교든 시골 학교든 세상 모든 아이들은 다 똑같거든요. 나에게 친절한 친구는 좋아하고 폭력적인 친구를 싫어하는 아이들이 그곳에도 있습니다. 님의 아이가 지금의 모습으로 대안학교에 가면 그곳 아이들이 환영하겠습니까? 곧 머잖아 힘든 상황을 또다시 만나게 됩니다. 아이가 변하지 않은 채 학교만 바꾼다고 해결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그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던 아이들은 님의 아이 때문에 오히려 혼란을 겪겠지요. 잘 지내고 있었는데 어디서 거친 아이 하나가 와서 마구 괴롭히기 시작하니 말입니다. 더구나 아이는 새로운 학교로 가서 이번에는 아빠와도 떨어진 채,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부담을 가집니다. 또, 전학을 보내면서 아이에게 뭐라고 설명하시겠습니까?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할까요?
"내가 잘 못해서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야 하나 봐. 내가 벌 받는 건 아닐까, 쫓겨 가는 건 아닐까?"
안 그래도 친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만들기 힘들어하는 아이에게 이는 가혹한 벌일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 님의 아이의 치료와 별도로 부모님께 이런 안내를 드리고 싶습니다.
** 아빠는 무조건 야단만 치는 역할로 머물지 마시고 아이와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세요.
같이 야구도 하고 캠핑도 하고, 아이로 하여금 가족 구성원의 한 역할을 하게 해 주세요. 간단해요. 예를 들어 캠핑을 가신다면 아이에게 텐트 치는 걸 맡겨주세요. 스스로 텐트 칠 장소를 정하고 조립하고 팩을 박으면서 아이는 자기가 가족을 위해 상당한 역할을 한다고 느낍니다. 그러면 책임감도 생겨나고 그 책임감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실수를 조심합니다. 그리고 더 큰 역할을 하고 싶어 스스로 찾아보게 될 겁니다. 자기에게 역할을 준 아빠를 좋아게 될 거고요.
** 아이와 아빠의 신뢰관계를 회복하셔서 아빠의 훈육이 아이로 하여금 자기를 위한 걱정이라 느끼게 하세요.
이 역시 간단해요. 야단치기 전에 아빠가 뭘 걱정하는지 말하세요. 친구들과 잘 놀고 선생님께도 인정받으며 자라게 도와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고백하세요. 이런 말이 종아리 열 대 보다 더 효과가 있을지 몰라요.
** 아빠가 야단치는 걸 엄마에게도 나눠주세요. 아빠 혼자 아이를 야단쳐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세요.
야단은 아이와 더 가까운 사람이 치는 게 효과가 더 있어요. 엄마에게도 역할을 주세요. 사연에는 안 나와 있지만, 제 생각엔 아빠가 권위적이실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아이 교육을 놓고 엄마와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고 엄마를 일방적으로 나무라고 훈계하는 분 같아요. 아이가 보기에는 아빠가 엄마를 무시하는 거지요. 그래서 아이가 엄마 말을 더 안 듣는 겁니다. 그런 태도는 앞으로 상황을 더 악화시켜요.
** 엄마는 아이의 문제를 피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뛰어드세요.
처음부터 지금처럼 아이의 문제를 외면하게 되신 건 아닐 거예요. 잘 생기고 귀여운 내 아이의 엄마로 당당히 나서던 때가 분명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이가 문제행동을 하기 시작하면서 변하셨을 겁니다. 사람들이 아이의 행동을 엄마인 자기가 잘 못 교육한 탓이라 생각할까 봐(실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사실이니까요) 아이가 혼나면 마치 엄마가 혼나는 것 같으셨지요? 그래서 창피한 마음이 들었고 뒤로 물러나게 되셨고요. 하지만 전 알아요. 님이 일부러 아이를 그렇게 키운 게 아니라는 걸요. 세상 모든 엄마들은 아이를 처음 키워보잖아요. 처음이라 잘 몰라서 그렇게 키웠을 겁니다. 그건 잘못이 아니에요. 또 잘 해보려고 해도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 너무 강해서 어쩔 수 없었을 수도 있어요. 아이가 그런 기질로 태어난 건 또한 아이 잘못이 아닙니다. 어떤 아이는 수줍음이 많게 태어나서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크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산만하게 태어나서 정신없기도 해요.
어떤 아이는 싸움을 좋아하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유난히 친절하기도 해요. 사람은 다 성향을 각기 다르게 갖고 태어나요. 님의 아이도 태어나 보니 자기가 그런 아이였던 거잖아요. 이런 아이가 불쌍한 거예요. 그런데 엄마까지 아이를 외면하면 아이는 어디에 기대겠어요? 아이를 위해 용기를 내 보세요.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내 아이, 비록 지금은 친구들에게 배척받고 있지만 여전히 내겐 가장 잘 생기고 착한 내 아이를 위해 불편하시겠지만 학교를, 그리고 전문기관을 방문하세요. 그리고 아이의 교육을 의논하세요. 이런 걸 굳이 아빠가 결정(허락) 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엄마도 할 수 있어요.
** 아이의 분노조절 모델이 되어 주세요.
아이가 사고를 내면 아빠가 혼내잖아요. 어쩌면 이건 우아한 표현일지 몰라요. 잘은 몰라도 대부분 이런 과정을 겪습니다.
* 아이가 학교에서 친구를 때려 선생님의 전화가 옴 -> 엄마가 아이를 야단 침 -> 아이가 좀 반성하는 것 같으면 엄마선에서 야단이 끝내지만 아이가 말을 안 들으면 아빠에게 알림 -> 화난 아빠, 아이를 야단 침(아이는 엄마를 원망함) -> 며칠 뒤 또 아이가 학교에서 싸워 연락이 옴 -> 엄마가 아이를 야단침 -> 이번엔 아이가 엄마에게 더 저항함(지난번에 아빠에게 일러바친 원망이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음) -> 아이가 대든다 생각하고 이번에도 아빠에게 알림 -> 아빠는 아이를 더 심하게 야단침(아이는 엄마에 대한 분노가 올라감) / 이와 같은 상황이 반복됨
님의 경우도 이 상황일 겁니다. 단순하지요? 이런 아이들이 학교에서 저와 상담할 때 자기 부모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더군요.
"우리 엄마는 아빠를 개입시킴으로써 나를 괴롭히는 치사한 사람이고,
우리 아빠는 욱하는 성격에 힘으로 나를 통제하려는 나쁜 사람이에요."
역시 방법은 간단해요. 아이로 하여금 우리 부모가 나를 나쁜 감정으로 대한다는 느낌을 안 주시면 됩니다. 실제 부모님은 아이를 너무 사랑하시잖아요. 나쁜 감정도 없고요. 근데 왜 아이는 항상 그 반대의 느낌을 받을까요? 이런 부모는 부부 싸움할 때에도 이런 식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요. 욱하는 마음에 불같이 화를 내고 상대의 잘못을 꼬집어 내어 비난하는 치사한 방법을 쓰는 것처럼요. 이젠 그러지 마시고 부모가 먼저 분노조절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방법은 많잖아요. 화가 나면 속으로 열을 센다든지, 일단 그 장면을 피한다든지요. 부모님의 이런 모습들을 보면 아이도 점점 변해 갑니다. 아직 부모에게 잘 보이고 싶은 나이, 이제 겨우 열 살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