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순간에도 아이 편이라는 걸 말해주세요.
질문 :
6학년 딸, 4학년 아들을 기르는 직장맘입니다. 얼마 전, '태양의 후예' 드라마를 아이들과 같이 보면서 있었던 일입니다. 제가 송중기가 참 멋있다고 했더니 딸아이가 송중기보다 여자 주인공인 송혜교가 더 예쁘지 않냐고 하더군요. 그 말을 들은 동생이 불쑥 누나 레즈냐, 여자가 왜 여자를 이쁘다고 하냐, 변태냐, 이러면서 놀리는 거예요. 그 말에 딸아이가 갑자기 화를 내면서 동생한테 크게 화를 내고 때리더라고요. 딸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제가 좀 놀라서 뭐, 그런 농담을 갖고 그렇게 화를 내냐고 나무랐는데 아이가 그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다 말고 방으로 들어가길래 제가 좀 심했나 싶어 따라 들어가 보니 울고 있는 거예요. 아이를 달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아이가 아무래도 자기는 레즈비언 같다는 충격적인 말을 하네요.
요즘 6학년 여자 애들 중 이런 아이들이 많은가요? 사춘기라 그러나 보다 생각하면서도 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니 장난은 아닌 것 같아 이렇게 여쭙니다. 아이의 학교에 찾아가 볼까 하는데 아이가 상담을 하더라도 절대 자기가 한 얘기는 하지 말라고 하네요. 생각해 보니 아이가 다른 여자 아이들에 비해 옷 입는 취향이 덜 여성적이었어요. 보통 여자 아이들은 분홍색 옷 입히잖아요. 그런데 제 딸아이는 분홍색을 싫어하더라고요. 아이와 비슷한 또래 아이들이 남자 아이돌을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제 아이는 전혀 티를 안 냅니다. 아이는 어릴 때부터 순하고 머리도 좋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키우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았어요. 반장도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나무랄 데 없는 아이라고 생각했는데 동성애 취향이라는 말을 들으니... 저나 남편은 전혀 그런 성향이 없거든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 :
질문을 읽으면서 어떤 걱정이 생겼습니다. 내 아이가 동성애자로 성장하려고 한다, 당신은 교사니까 이를 막을 방법을 알려달라. 이런 요구를 하실까 봐요. 다들 그러시거든요. 제가 잘 못 이해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님은 저에게 막을 방법을 내놓으라고는 안 하시는군요. 아이가 저렇게 말하는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로선 다행입니다.
님의 딸아이가 동성애 취향이 맞는지, 아니면 일시적 환상에 불과한지 지금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반장도 했고(친구들의 신임을 얻을 만큼 똑똑하다는 뜻이고) 공부도 열심히 하는 걸로 봐서 보통의 6학년 여자 아이 이상의 분별력이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아이의 말을 가볍게 넘길 수 없다는 뜻이지요. (님도 그래서 저에게까지 문의를 해오셨겠지요.) 솔직히, 제 생각에 동성애... 관련한 성적 취향의 문제는 정답이 없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허락할 거냐, 말 거냐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거지요. 그건 님이 엄마로서 지금 6학년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의 삶을 대하는 가치의 문제고, 인간이 다른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을 대하는 철학에 대한 물음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에게 아이가 동성애자로 성장하는 걸 막을 방법을 내놓으라고 해도 그럴 수 없습니다.) 전 동성애 취향은 아닌 사람입니다. 하지만 동성애자들에 대한 차별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걸 넘어서 사람은 종교든 성적 취향이든 돈이든 공부든 그 어떤 이유로라도 차별받으면 안 되지요. 그런 이유로 여러 나라에서 이미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있고요. 저도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건 아니었습니다. 동성애는 HIV 위험을 높인다느니, 사회를 타락시키고 성도덕을 망가뜨린다느니, 사람들이 말하면 그런가 보다 했었지요. 저로선 동서애자들이 비난을 받고 차별을 받든 상관 없는 사람이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냥 저 사람들은 왜 하지 말라는데도 굳이 저렇게 사나... 딱하다, 뭐 그렇게 대충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 생각이 바뀌는 일이 있었습니다. 교사가 되면서였지요. 지금까지 제가 주로 고학년을 담임하면서 만났던 천여 명의 아이들 중 자기가 동성애 취향이라는 걸 드러낸 아이들이 몇 있습니다. 아이들은 나름 자기가 편하다고 느끼는 상대에게 먼저 커밍아웃을 하게 마련이잖아요. 그 아이에게 제가 그런 대상이었겠지요. 저를 불편하게 생각해서 말하지 못한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실제 저를 거쳐 간 아이들 중 동성애 취향의 아이들은 더 많을 겁니다.
저에게 자신의 동성애 취향을 말해 준 아이들 대부분은 지금 일반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직장생활도 하지요. 그 아이들은 자기의 성 정체성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 아이들이 예전에 저에게 고백할 땐 잘못 알아서였을까요?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때는 아직 뭘 잘 모를 수도 있는 시기니까요.) 또는 다행히 남들처럼 이성을 만나 사랑하고 결혼해서 사는 게 잘 맞았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요? 제자들 중 어떤 아이들은 자기의 성 정체성을 스스로 감추며 일반인으로 참고 사는 건 아닐까,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엔 이렇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고 사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개인의 성적 취향을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로 진보하고는 있지만 아직 각 가정에서까지 그렇지는 못하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유지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러기까지 고난이 있었겠지요.
묻고 싶습니다. 성적 소수자(LGBT-레즈비언, 게이, 바이섹슈얼, 트랜스젠더). 이들이 사회적으로 골칫덩어리인가요? 사회를 타락시키는 요인들인가요? 혹시 이들이 지금 대한민국을 망하게 하고 있나요? 이들 때문에 경제, 정치가 저 모양입니까? 사람들은 어떤 근거로 이 아이들을 내모는지요. 님의 아이 또래의 아이들은 동성애를 비롯한 성적 소수자들에 대해 선입견을 갖고 있습니다. 뭔가 머리가 부족하거나 정신력이 약하거나 일반인에 비해 열등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요? 네, 맞습니다. 어른들의 영향이겠지요.
제 제자 중 성적소수자가 있습니다. 제자 소식을 들었을 때 놀랐습니다. 그 아이는 너무 평범한 아이였거든요. 부모님께 애교를 부려 귀여움 받고 선생님 말 잘 듣는 그런 학생 말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먹고 살아오면서 독특한 성 정체성을 지난 아이들이 위협이 되거나 피해를 주는 걸 전 본 적이 없습니다. 일반인과 똑같아요. 스스로 커밍아웃 해 오지 않는다면 구별할 수 없습니다. 그런 그들이 성장해오면서 만났을 차별과 멸시의 시선으로 괴로워했을 걸 생각하면 애잔합니다. 성 정체성이 두드러지는 사춘기 무렵에는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고 별종 취급하는 부모 때문에, 군에 가거나 사회에 나가면 뭔가 모자라는 존재 취급하면서 따돌리는 동료들 때문에 이들은 끝없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선하고 정의로우며 성실한 사회인,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미안하면서 고마운 일입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자기가 선택한 것도 아니고, 태어나 보니 자기는 이성보다 동성이 더 좋을 뿐인데 그게 무슨 죄라고 평생을 사회의 주류에서 밀려나 언저리에서 죄인처럼 살아야 하는 걸까요. 성적 소수자는 일반인에 비해 자살충동을 더 자주 느낍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이들의 자살충동 이면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이기심으로 무장한 우리 일반인들이 있습니다. 성적 정체성에 대해 가족으로부터 존중받으며 성인이 된 아이는 사회생활도 건강하게 잘 하겠지요? 이렇게 따뜻하고 사려 깊은 가족을 둔 아이는 그저 복이 많은 거라 치부해야 할까요? 저는 이들도 똑같이 사랑받고 존중받으며 자라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서 이 상담을 우선 답해 드리고 싶습니다.
* 어느 시대에나 동성애자는 있었습니다.
미셀 푸코의 <성의 역사>라는 책을 보면 동성애는 고대 이집트, 그리스 시대뿐 아니라 중세, 근대, 현대를 통틀어 항상 존재해 왔다고 나옵니다. 우리나라도 삼국시대(화랑도 중에 동성애자가 있었다고 함)나 고려시대(공민왕도 동성애자), 조선시대(세종대왕의 며느리도)에도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연구 결과만 봐도 대략 11%의 사람은 양성애적 특성을 지니며 동성애자도 3% 정도는 된다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인구 100명당 1명 꼴이라고 공식 발표) 그래서 성적 소수자라고 별도로 불러줍니다. 사실 이것도 은근한 차별입니다. '소수자'라니. 굳이 '너희들은 몇 명 되지도 않는 별난 사람이야'라고 부르는 것 같네요. 이걸 보면 사람들은 동성애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나 봅니다. 중세시대에는 이들을 마녀로 몰아 화형에 처하거나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고 심지어 현대에 와서도 나치는 동성애자들을 상대로 한 홀로코스트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왜 사람들은 아주 소수에 불과하고 힘도 없는 이들에게 그토록 가혹할까요? 그들이 동성애자가 되는데 뭐 하나 보태준 것도 없으면서 말입니다. 이거야 말로 인간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증명하는 건 아닐까요? 자기와 다르면 집단에서 일단 불리한 곳으로 밀어내 차별하고 기존의 권리를 제한하는 집단이기주의 말입니다.
님이 딸아이의 말을 듣고 님의 가슴이 철렁해진 건, 아마도 동성애자들에게 가해진 역사적 박해가 떠올라서였겠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도 곧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질 예정이고(현재 국회에 계류 중) 사회 인식도 성적 소수자들에게 우호적으로 바뀔 겁니다.(아래 통계 참조) 다행히 님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은 님이나 제가 살던 시대처럼 애써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사회일 겁니다. 님의 아이가 동성애자인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절대 그래선 안 되는 일은 아닌 겁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님의 아이가 어떤 성적 정체성을 선택하든 옳고 그름이나 정의와 불의같은 도덕적 비난을 받을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니까요. 물론 당연히 부모의 잘못도 아닙니다. 아이의 성적 정체성을 고민하는 부모님과 상담하다 보면 그분들이 꼭 물어오시는 질문이 왜 하필 자기 아이가 그런 애로 태어났느냐는 겁니다. 전 세계적으로 750명 중 한 명 꼴로 다운증후군 아이가 태어나는 것처럼 동성애 취향의 아이도 그냥 태어납니다. 또 태어나는 거면 어떻고, 후천적으로 환경에 의해 만들어지는 거면 어떻습니까? 중요한 건 지금 내 아이가 엄마, 나는 동성애 취향인 것 같아요,라고 말하고 있잖아요. 내 아이가 그렇다는데 그 어떤 이유나 논리가 필요할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가 좋다고 하면 엄마는 그게 진리고 법이잖아요. 엄마의 모성애는 그렇잖아요.
6학년이면 성적 정체성이 생기는 나이입니다. 성장 속도가 정말 빠르지요. 폭풍성장이라고 하는 기간입니다. 아이 운동회 때 학교 가 보셨지요? 6학년 여자 아이들 달리기 하는 거 보세요. 엄마들과 몸이 똑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엉덩이고 가슴이고 발육이 빨라서 어린이 같지 않습니다. 뒤에서 보면 아가씨처럼 보이는 이 아이들이 막상 앞에 가서 눈깔사탕을 물고 헤헤거리지요. 저 아이들이 한 십 년쯤 지나 한껏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연애도 하고 삶의 절정을 누릴 때, 그 아이가 어떤 성적 취향을 지녔느냐에 따라 누구는 당당히 사랑을 하고 누구는 몰래 숨어야 한다면 그런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닐 겁니다. 아이에게 동성애 티 내지 말라고 겁 주기 이전에 어른들이 미리 동성애자들도 기쁘게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지요. 아직 우리 사회는 자기와 다른 사람을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는 종교적으로, 누구는 정치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적 소수자들을 적으로 만듭니다. 역사적으로 우린 이런 반복을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죄 없이 죽어간 사람들도요. 그게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압니다. 세상에 어떤 신이 자신의 이름을 들어 다른 사람을 죽이라고 명하겠습니까. 사람들은 가만있는 신을 끌어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팔아먹는지도 모릅니다. 현대는 인간존중 사회로 나아가고 있고,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들은 대부분 동성애를 합법화하고 인정합니다. 영화나 책, 뉴스를 통해 이젠 동성애의 수용이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내면에서는 아직 아닌가 봅니다. 남의 나라, 남의 집 아이의 동성애는 지지하면서 정작 내 아이의 동성애는 엄두가 안나는 거지요. 그래서 아직도 우리나라는 성적 소수자들에게 편안한 나라가 아닙니다. 유태인이나 집시가 나쁜 짓을 많이 해서 나치에게 고통을 당한 게 아니라 그들이 소수라서 만만한 게 이유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동성애를 범죄시 하는 나라들을 보면 근본주의 종교적 성향이 강한 걸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종교를 등에 없고 국민들에게 가혹한 절제를 요구합니다. 왜 하나같이 소수들에게만 그런 절제를 요구하는지 모를 일이지만요. 그들도 사람이고 국민인데 말입니다. 푸코의 책에서처럼, 어떤 위정자는 자기 정권에 대한 정통성을 종교라도 끌어와서 포장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외치는 거지요. '내가 비록 치사한 방법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앞으로는 내가 동성애를 막아내어 깨끗한 사회를 만들겠다! 그러니 잘 봐달라! 우리나라도 과거에 정권만 바뀌면 부정부패를 개혁한다는 미명 하에 죄 없는 사람까지 잡아다 괴롭힌 사례가 있지요? 다행히 지금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다. 서구 국가들만큼 성적 소수자들에게 너그럽지는 않지만, 의식 있는 이들의 노력으로 점점 개선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님이나 제가 어리던 과거라면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자기의 성 정체성을 존중받아도 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나요? 통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성적 소수자 아이를 둔 부모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여주는 통계지요? 우선 아이의 감정, 성 정체성에 집중해주세요. 그리고 존중해주겠다는 태도를 미리 분명히 알려주세요. 그러면 아이는 마음이 편한 상태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더 신경 써서 들여다보려고 할 겁니다. 아이가 엄마에게 자기 정체성을 말할 즈음이라면, 이미 친한 친구에게도 말을 했을 겁니다. 이 상황에서 부모가 아이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이는 앞으로 자신의 문제를 부모보다 친구에게 의논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엄마-딸의 소중한 연결고리 하나를 잃는 셈입니다. 부디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마세요. 어떻게든 따뜻하고 단단한 연결고리를 유지하세요. 그래서 나중에 정말 사이좋은 엄마-딸로 살아가세요. 우리가 혼자, 또는 아이 없이 부부만 살아도 되는데 굳이 아이는 낳아 기르는 까닭이 뭡니까? 나중에 늙어가면서도 자식과 함께 즐겁게 살려고 그러잖아요. 아이가 좀 특별해도 여전히 내 아이니까, 그렇게 사시면 됩니다. 주변에서 딸과 잘 지내는 엄마들을 보면 참 위대해 보이더라고요. 님도 꼭 성공하세요.
아이가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게끔 대해주세요.
"내가 어떤 정체성을 지니고 있어도 우리 엄마, 아빠는 내 편이야. 그러니 난 일부러 나의 정체성을 왜곡하거나 숨길 필요가 없어. 다른 집 부모님들이라면 벌써 난리 나고 혼나는 것뿐 아니라 정신 병원에 끌려갈 텐데 우리 부모님은 고맙게도 내 편이야."
그리고 아이와 함께 동성애에 대해 공부해보세요. 아이는 아직 자기의 성 정체성을 확실해 모를 수도 있습니다.
공부하다 보면 동성애자인지, 이성애자인지, 혹은 양성애자인지 구분이 가능할 겁니다. 사람의 성 정체성은 대부분 변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 정체성을 잘 모른 채 사회적으로 남들을 따라 사는 거지요. 님의 아이는 그런 평범함을 거부하고 자신에게 더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아이와 비슷한 성적 취향을 지닌 아이를 둔 가족의 모임에 함께 가보셔도 좋습니다. 내 아이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실 겁니다. 더 나아가 아이와 함께 편견에 맞서 주세요. 아이는 님의 딸로 태어난 걸 자랑스러워하며 감사할 겁니다. 지금 님의 아이는 죄를 짓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죄책감으로 느끼지 않게 해 주세요. 이러기 위해서는 가족의 정신적 지지가 필요합니다. 어른들에게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타인의 시선이 아이에게는 공포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TV 뉴스에 나와 "성적 소수자들을 인정하게 되면 사회가 망한다."고 버젓이 말합니다. 또 동성애를 성적으로 '타락'했다는 예로 들기도 합니다. 세상에, 이런 논리가 어디 있을까요. 다 큰 어른이 자기들끼리 좋아서 합의하에 성관계를 하는 게 왜 '타락'입니까. 그렇게 따지면 인간의 어떤 행동이라도 '타락'이라는 표현으로 덮어씌울 수 있겠군요. 밥을 먹는 것도 타락, 똥을 누는 것도 타락, 등산하는 것도 타락으로 매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하지요. 그건 '다수'가 일반적으로 하는 거니까요.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하는 건 '보통'이고 '일반적'인 문화로 구분하면서 왜 소수가 하는 건 함부로 '타락'이라고 구분합니까. 이렇게 물어오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어른으로서 제가 뭐라 답해야 할지 부끄럽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이런 묻지 마 식 증오를 몹시 두려워합니다. 이럴 때, 아이와 함께 해 주시면 아이는 힘을 얻을 겁니다. 어떤 아이는 저에게 커밍아웃을 하면서 자기가 이렇다는 걸 절대 말하지 말라고 여러 번 다짐하더군요. 알려지면 자긴 누군가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자기의 성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한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들이 공포를 느껴야 합니까? 도대체 왜? 아이에게 이렇게 설명하면 어떨까요?
"어떤 사회도 성적 소수자들 때문에 망하지는 않아. 망하는 건 경제, 정치, 부정부패가 원인이지 동성애가 아니야"
다행히 요즘 학교에서는 차별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학생 인권 조례도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끼리는 차별 금지법에 대한 상식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이는 국제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회는 진보하고 있으니 지금의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우리도 미국이나 유럽처럼 다양성을 인정하게 될 겁니다. 제가 담임하던 시절, 저에게 커밍아웃했던 한 제자는 요즘도 아버지와 서먹합니다. 아버지가 완고하셔서 이십 대 중반이 되도록 비밀로 하다가 늦게 털어놓았다는데, 아버지가 끝내 인정해주지 않았거든요.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은 거지요. 부모님의 반대와 비난은 아이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게이의 자살시도율이 높음 / 가족의 정신적 지지를 받는 게이의 자살률은 낮음)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아이가 뭘 잘못해서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태어나보니 자기가 이런 사람이 이서 이렇게 살고 싶다는 건 사람으로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잖아요. 이런 아이들을 배척하기보다는 오히려 남자, 또는 여자의 분명한 성 정체성으로 태어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소수자들을 도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이런 분도 있다고 합니다. 이 분의 출마는 이 사회를 바꾸는 수레바퀴를 굴리는 시도였을 겁니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이런 분들이 더 이상 뉴스거리가 될 필요가 없겠지요.